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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Story] 바퀴벌레가 만든 우유의 영양가는? 2026 이그노벨상 톺아보기
<KISTI의 과학향기> 제3068호 2026년 10월 26일가치가 있는 연구와 그렇지 않은 연구가 따로 있을까. 바퀴벌레가 새끼에게 먹이는 단백질의 영양분을 분석하는가 하면 키스(Kiss)를 엄격하고 정의하고, 모기의 주둥이를 3D 프린터 노즐로 쓰는 연구 앞에서는 선뜻 답하기 어렵다. 얼핏 괴짜 과학자들의 장난 같지만, 이들 연구에는 단백질 구조부터 생물의 진화, 유체역학, 생체 재료공학에 이르는 과학의 정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진지한 연구를 조명하는 상이 바로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이다. 미국의 과학 유머 잡지 '기상천외한 연구 연보(Annals of Improbable Research, AIR)'가 1991년 제정한 이 상은 '일단 웃게 하고, 그다음 생각하게 하는' 연구에 수여되며 화학·물리학·의학·생물학·경제학 등 10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가린다. 올해 시상식은 9월 3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렸는데, 주최 측에 따르면 미국의 비자·이민 단속 강화로 수상자와 취재진이 방문하기에 안전하지 않아 36년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밖에서 열려 눈길을 끌었다. 과연 올해는 어떤 연구들이 이그노벨상은 차지했을까?
바퀴벌레가 만들어 낸 우유, 소 우유 단백질보다 에너지 3배
올해 화학상은 새끼를 낳는 바퀴벌레(Diploptera punctata)가 만드는 '우유' 속 단백질을 분석한 연구진에게 돌아갔다. 이 바퀴벌레는 포유류가 젖을 먹이듯 어미가 영양액을 분비해 새끼에게 공급하는데, 연구진은 이 영양액 속 단백질이 같은 무게 기준으로 소 우유 단백질보다 세 배 많은 에너지를 지녔다고 밝혔다.
높은 에너지의 비결은 영양분을 담는 방식에 있다. 포유류는 액체 상태의 젖으로 영양분을 전달하는데 배아 단계의 바퀴벌레 새끼는 삼킨 우유를 몸속에서 단백질 결정으로 만들어 저장한다. 단백질 분자가 빈틈없이 맞물려 쌓인 이 결정은 지방산을 품고 당이 붙은 채로 영양분을 빽빽하게 농축한다. 같은 양에 훨씬 많은 에너지를 담을 수 있는 이유다.
당단백질은 당이 붙는 방식이 다 달라서 균일한 결정을 얻기 어렵다. 그래서 결정을 만들기 전에 당을 떼어내기도 한다. 그런데 이 결정은 아미노산 서열과 당, 지방산이 제각각인 단백질이 섞여 있는데도 원자 하나하나의 위치를 가려낼 수 있을 만큼 세밀하게 구조가 분석됐다. 연구진은 이런 천연 단백질 결정의 구조를 생체 내에서 원자 해상도로 규명한 것은 자신들이 아는 한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자연이 만든 단백질 결정의 구조를 들여다본 이 연구는 생물이 영양분을 저장하고 전달하는 독특한 방식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바퀴벌레의 영양액이라는 엉뚱한 질문이 자연의 정교한 설계를 엿보는 창이 된 셈이다.
키스와 독사, 동물의 행동을 묻다
생체역학상은 종을 가리지 않고 적용되는 키스(Kiss)의 정확한 정의를 다룬 연구에 돌아갔다. 연구진은 키스를 “공격적이지 않고, 특정 대상을 향해, 같은 종 사이에서 이뤄지는 입과 입의 접촉으로 입술 등의 움직임이 있고 먹이 전달은 없는 행동”으로 규정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인간뿐 아니라 북극곰, 일부 조류, 심지어 개미도 키스를 한다. 연구진은 영장류의 키스가 약 2,150만 년 전 대형 유인원의 공통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봤고, 이는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도 키스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다음 과제로 동물이 왜 키스하는지를 꼽았다.
생물학상은 독사를 직접 밟으며 무엇이 독사를 자극해 사람을 물게 하는지 살핀 연구가 받았다. 실험 방식은 다소 위험해 보이지만, 뱀이 사람을 무는 조건을 이해하려는 진지한 연구다. 연구진은 뱀의 몸 곳곳을 조심스럽게 밟아 보며 어떤 자극이 ‘물림’으로 이어지는지 확인했다. 이 연구는 뱀과 사람이 뜻하지 않게 맞닥뜨리는 상황을 이해하고 사고를 줄이는 데 참고가 될 수 있다.
일상의 불편에서 첨단 기술까지
이그노벨상 수상작 가운데 상당수가 일상에서 떠오른 질문에서 출발한다. 올해 의학상은 코를 풀 때 공기가 흐르는 속도와 양, 귀에 가해지는 압력 등을 분석한 고(故) 운노 도쿠지 전 아사히키와 의과대학 명예교수의 연구에 돌아갔다. 이 연구의 제목은 '코를 푸는 법: 코풀기의 공기역학적 연구'다. 이 연구에 따르면 양쪽 콧구멍을 한꺼번에 풀기보다 한쪽씩 천천히 번갈아 푸는 것이 콧속 분비물을 내보내는 데 효과적이다. 사소해 보이는 행동에도 진지한 탐구가 가능하다는 점을 다시 일깨우는 연구다.
물리학상은 소변이 튀는 문제를 유체역학으로 푼 연구진이 받았다. 연구진은 소변기에서 액체가 튀는 원인을 실험으로 검증하고, 튐을 현재 소변기에서 흔히 겪는 양의 1.4% 수준까지 줄일 수 있는 설계를 고안했다. 연구에 참여한 한 물리학자는 샌들에 카키색 바지를 입고 소변기를 쓴 경험에서 연구의 착안점을 얻었다고 밝혔다.
토양과학상은 25개국 이상에서 지역에서 시민 과학자들이 속옷 1,000벌을 묻었다가 두 달 뒤 꺼내 살펴본 연구가 차지했다. 속옷이 분해된 정도로 토양이 얼마나 생물학적으로 활발한지 가늠한 것이다. 이 연구로 토지 이용 방식이 속옷의 분해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 가운데 하나임이 확인됐다.
기술상을 받은 연구는 한발 더 나아가 생물의 몸을 아예 공학 부품으로 썼다. 모기의 주둥이를 고해상도·저비용 3D 프린팅 노즐로 활용하는 '네크로프린팅(necroprinting)'이다. 연구진은 여러 생물의 미세한 구조를 살펴본 끝에 모기를 골랐다. 주둥이가 안쪽 지름이 20~30마이크로미터로 매우 가늘면서도 곧고 단단해, 인쇄할 때의 압력을 견디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모기처럼 사람들이 불쾌하게 여기는 대상도 뜻밖의 쓸모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사람의 마음과 관계를 들여다보다
이 밖에 인간을 다룬 연구들의 수상도 눈에 띈다. 먼저 후각상은 부모에게 아기의 냄새는 좋게 느껴지지만, 청소년의 냄새는 그렇지 않다는 연구가 받았다. 실제로 부모들에게 자녀의 체취가 얼마나 좋게 느껴지는지 평가하게 했더니 자녀의 나이가 많을수록 점수가 낮아진 것이다.
경제학상은 부유한 사람일수록 비윤리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에 돌아갔다. 연구진이 현장 관찰과 실험을 진행한 결과 도로에서는 고급 차를 모는 운전자가 보행자의 앞길을 끊는 경우가 더 많았고, 스스로 높은 계층이라고 느끼도록 유도한 참가자는 아이들용으로 따로 놓아 둔 사탕을 더 많이 가져갔다. 평화상은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에게 못되게 구는 친구를 오히려 높이 평가하는 경향을 기록한 연구에 돌아갔다. 두 연구는 도덕적 판단과 인간관계를 개인의 성품만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 바라보게 한다.
과학의 발전은 언제나 거대한 문제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때로는 " 바퀴벌레의 우유는 어떤 모습으로 담겨 있을까", "키스란 정확히 무엇일까" 같은 엉뚱한 질문이 익숙한 현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한다. 어쩌면 과학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대단한 답을 이미 안다는 자신감보다 남들이 지나친 질문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호기심인지도 모른다.
[용어 풀이]
1) 당단백질 : 당 성분과 단백질이 단단히 결합해 뭉쳐진 물질. 세포막에서 외부 신호를 감지하거나 면역력을 유지한다.
2) 네크로프린팅 : 죽은 생물의 신체 구조를 공학 부품이나 도구로 직접 재활용하는 제조 기술
[참고자료]
▶ Ig® Nobel Prize Winnershttps://improbable.com/ig/winners/
글 : 김우현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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