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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Story] 개미 군락에서 벌어진 모친 살해, 누가 여왕을 죽였나
<KISTI의 과학향기> 제3204호 2026년 01월 05일흔히 동물들은 암컷과 수컷의 유전자가 결합해 새로운 유전 조합을 만드는 ‘유성생식’으로 번식한다. 한편, 체세포 일부가 떨어져 나가 부모와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체가 만들어지는 ‘무성생식’을 하는 생물도 있다. 유성생식 형태로 번식하는 동물 종에서는 모친 살해, 즉 자식이 어미를 살해하는 행위는 매우 드물다. 어미의 보호와 도움없이 생존하기 어려운 자식으로선 어미를 제거해 얻는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일부 거미 종은 어미가 자신의 몸을 새끼들의 먹이로 제공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놀라운 모친 살해 행동이 있다. 바로 특정 개미 종의 일개미들이 자신들의 여왕개미를 죽이는 사례다. 표면상 이득이 없는 것 같은 이 행동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 없이 군락을 빼앗는 방법
일본 규슈대학교 생물학과 다카스카 케이조 교수 연구진은 황개미와 일본풀개미 군락에서 흥미로운 현상을 관찰했다. 각 개미 군락에 동양털개미(Lasius orientalis)와 황털개미(Lasius umbratus), 이른바 ‘기생 개미’가 숙주 개미를 조종해 ‘여왕 살해’ 행동을 일으키고 군락을 찬탈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숙주 개미와 기생 개미는 모두 같은 속에 속하지만, 둥지 침입이 쉬운 것은 아니다. 기생 개미는 숙주의 둥지에 침입하기 위해 병정개미와 일개미를 속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기생 개미는 냄새로 위장하는 방식을 택한다. 기생 여왕개미는 밖을 돌아다니는 숙주 개미들이 분비하는 페로몬을 묻혀 아군인 척 위장한다. 불과 하루만에 기생 여왕개미는 숙주의 둥지에 잠입할 수 있게 된다.
둥지에 무사히 잠입한 기생 여왕개미는 숙주 여왕 개미를 찾아낸 후, 복부에서 분비되는 개미산을 숙주 여왕개미에게 뿌린다. 관찰 결과, 동양털개미 여왕은 약 20시간 동안 숙주 여왕 개미에게 15차례에 걸쳐 개미산을 분사했다. 이 과정에서 숙주 일개미들은 점차 흥분 상태에 빠져 자신들의 여왕을 공격했다. 숙주 여왕개미는 결국 나흘만에 살해됐다.
황털개미 여왕의 사례는 더욱 극적이다. 이들은 단 두 차례의 개미산 분사만으로도 숙주 일개미들이 여왕개미를 공격하게 했다. 여왕을 잃은 숙주 개미들은 곧바로 기생 여왕을 받아들였고, 기생 여왕이 낳은 알을 정성껏 양육했다. 숙주 일개미들은 완벽하게 조종당하고 있었다.
연구진은 개미산의 정확한 화학성분까지는 분석하지 않았지만, 이 물질이 숙주 일개미들에게 자신들의 여왕이 군락을 위협하는 침입자로 인식하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 신호가 공격적인 방어 행동을 촉발했고, 결국 여왕을 살해하는데 이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모든 기생 개미가 이런 방식을 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보통은 기생 여왕개미가 직접 여왕개미를 죽이고, 일개미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친다. 물론 이 경우 역공당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사레는 그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몸을 넘어 행동을 지배하다!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확장된 표현형》에서 유전자를 전달하려는 개체의 표현형은 자기 신체와 정신뿐만 아니라, 다른 개체의 신체와 정신에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례 역시 기생 여왕의 유전적 전략 숙주 일개미라는 외부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재편하는 ‘원격 조종’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이와 같은 원격 조종 사례는 다른 종에게서도 보인다. 한 기생말벌은 거미가 자신의 유충을 보호하기에 최적화된 형태의 ‘특수 거미줄’을 짜게 만드든다. 일부 흡충은 달팽이를 조종해 포식자의 눈에 잘 띄는 장소로 이동하게 만든 후, 새의 먹잇감이 되도록 유도한다.
화학적·신경학적 매개를 통해 타 생물의 의사결정 체계를 조정함으로써 자신의 복제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은 확장된 표현형 이론의 설명력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자연의 전략은 때로 잔인할 만큼 정교하다는 걸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된다.
글 : 권오현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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