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과학향기 Story
- 스토리
스토리
[과학향기 Story] 내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 관건은 시냅스 연결!
<KISTI의 과학향기> 제3032호 2026년 02월 16일시험장이나 중요한 발표 자리에서 알고 있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진땀을 뺀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던 흑역사일 것이다. 머릿속 어딘가에 분명히 정보가 있는데, 마치 잠긴 문 뒤에 있는 것처럼 꺼낼 수 없는 답답함. 우리는 흔히 이를 ‘건망증’이라 부르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거나 자신의 기억력을 탓하곤 한다.
그런데 우리 뇌 속 기억은 컴퓨터 속 파일처럼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특정 기억이 형성될 때 함께 반응하는 신경세포들의 집단, 이른바 ‘엔그램 세포’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룬다. 그리고 이 세포들을 잇는 다리가 바로 ‘시냅스’다.
최근 기초과학연구원(IBS) 기억 및 교세포 연구단은 엔그램 세포 사이 시냅스 연결이 충분히 강화되지 않으면, 저장된 기억이라도 회상이 어려워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기억을 ‘저장’하는 것과 그것을 찾아오는 ‘회상’은 별개의 메커니즘이라는 뜻이다.
단백질 합성 막으면 기억도 막힌다
IBS 연구팀은 공포 기억을 학습시킨 쥐를 대상으로 시냅스 변화를 직접 관찰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쥐에게 공포 반응을 학습시킨 뒤, 뇌 속에서 단백질 합성을 억제하는 약물을 투여한 것이다. 우리 뇌가 시냅스 연결을 강화하려면 새로운 단백질이 필요한데, 이 재료 공급을 차단해 본 것이다.
실험 결과, 단백질 합성이 억제된 쥐들은 시냅스 강화가 충분히 일어나지 않아 공포 기억을 자연스럽게 회상하지 못했다. 분명히 공포에 대한 정보는 뇌에 입력됐지만, 엔그램 세포들을 이어주는 다리(시냅스)가 부실한 탓에 기억을 불러오는 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이어서 연구팀이 엔그램 세포를 인위적으로 자극해 기억을 강제로 재활성화한 결과, 쥐들은 잊었던 기억을 즉시 되살려냈다. 즉 시냅스 강화가 안 돼 자연스러운 회상은 불가능했지만, 기억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던 것이다.
'숨은 기억'과 '사라진 기억'의 차이
연구팀은 건망증과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의 차이점도 관찰했다. 약물을 적게 투여해 ‘시냅스 연결 강도’만 약해진 경우, 외부 자극으로 기억을 복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백질 합성을 장기간, 강하게 억제했을 땐 상황이 달랐다. 이때는 엔그램 세포 간 ‘시냅스 연결 개수’ 자체가 줄어들었다. 연결 통로가 단순히 좁아진 것이 아니라 아예 끊어진 셈이다. 이 상태에서는 아무리 엔그램 세포를 자극해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다.
- 기억 형성 이전
- 평소 상태
- (기억형성 이후) 자연적 인출까지 가능
- 단회 투여
- (기억형성 이후) 인위적 인출만 가능
- 반복 투여
- (기억형성 이후) 인위적 인출도 불가능
- 평소 상태
기억 저장 시냅스
결국 기억을 끄집어내는 회상 능력은 시냅스 ‘연결 강도’에, 기억을 뇌 속에 붙잡아 두는 저장 능력은 시냅스 ‘연결 개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억을 저장하는 것과 불러오는 메커니즘이 시냅스의 서로 다른 구조적 특징에 영향받는다는 뜻이다.
기억 치료의 새로운 이정표
이 연구 결과는 건망증, 치매, 트라우마 치료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우리가 흔히 겪는 건망증이나 초기 인지 기능 저하가 ‘시냅스 연결 강화 과정이 일시적으로 원활하지 않은 상태’와 관련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만약 약해진 시냅스 연결을 다시 강화해 주는 방법이 개발된다면 어떨까? 숨어 있는 기억을 다시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특정 기억과 연관된 시냅스 연결을 선택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면, 새로운 방식의 트라우마 치료법이 등장할 수도 있다.
“아, 그게 뭐였더라?” 하며 머리를 쥐어뜯는 순간, 우리 뇌 속 엔그램 세포들은 끊어진 다리가 아니라 잠시 좁아진 길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기억은 생각보다 끈질기게 우리 머릿속에 남아있다. 단지 그 문을 여는 열쇠인 시냅스가 잠시 헐거워졌을 뿐이다.
세포간 연결이 중요! / 생각이 안나네... 건만증? / KISTI의 과학향기
[용어 풀이]
1) 시냅스: 신경세포 사이에서 전기적·화학적 신호가 전달되는 접합 구조로, 신경 회로를 구성하는 기본 연결 단위다.
2) 엔그램 세포 : 특정 경험이 뇌에 남긴 기억의 흔적을 엔그램이라고 하며, 뇌 속 기억을 담당하는 세포들의 무리를 엔그램 세포라고 칭한다.
[참고자료]
▶ Protein synthesis blockade prevents fear memory reactivation via inhibition of engram synapse strengthening (https://www.pnas.org/doi/10.1073/pnas.2510016123)
글 : 김청한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유진성 작가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
- [과학향기 Story] ‘잠에 곯아떨어진다’는 말, 비유가 아니었다?
- 한국에서는 깊이 잠든 상태를 두고 “잠에 곯아떨어졌다”고 표현한다. 영어권에서도 “fall asleep(직역하면 ‘잠에 떨어진다’)”이라는 말을 쓴다. 서로 다른 언어지만 공통적으로 ‘떨어진다’는 표현이 들어간다. 아마도 사람들은 침대에 누워 의식이 흐릿해지다 어느 순간 기억이 끊기는 이 경험을 서서히 이어지는 변화라기보다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듯 급...
-
- 저주파 자극기, 계속 써도 괜찮을까?
- 최근 목이나 어깨, 허리 등에 부착해 사용하는 저주파 자극기가 인기다. 물리치료실이 아니라 가정에서 손쉽게 쓸 수 있도록 작고 가벼울 뿐만 아니라 배터리 충전으로 반나절 넘게 작동한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다. SNS를 타고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을 퍼지면서 판매량도 늘고 있다. 저주파 자극기는 전기근육자극(Electrical Muscle Stimu...
-
- 인류를 구한 곰팡이, 페니실린의 발견
- 류 최초의 항생제는 영국의 알렉산더 플레밍이 찾아낸 ‘페니실린(Penicillin)’이라 할 수 있다. 플레밍은 1881년 스코틀랜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세인트 메리 의과대학에 들어가 미생물학자가 됐다. 그는 페트리접시라는 특수한 배양접시에 미생물을 키우면서 미생물의 성장을 억제하는 물질을 찾아내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연구를 통해 ...
이 주제의 다른 글
- [과학향기 Story] ‘잠에 곯아떨어진다’는 말, 비유가 아니었다?
- [과학향기 for kids] 고대 로마 의사들은 똥을 약으로 썼다?
- [과학향기 for kids] 코로 무엇이든 집어 올리는 코끼리의 비밀은?
- [과학향기 Story] 뇌 없는 해파리도 잠을 잔다?
- [과학향기 for kids] 무서운 곰의 변신! 성격도 입맛도 바꾼 이유는?
- [과학향기 Story] 자율형 로봇, 1㎜보다 작은 세계에서 움직이다
- [과학향기 for kids] 맛있게 먹은 랍스터 꼬리, 로봇으로 다시 태어나다!
- [과학향기 Story] 사랑은 로망 아닌 생존? 인간이 일부일처제를 선택한 이유
- [과학향기 Story] 개미 군락에서 벌어진 모친 살해, 누가 여왕을 죽였나
- [과학향기 for Kids] 2026년의 주인공, 붉은 말!…말의 비밀을 파헤쳐라!
ScienceON 관련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