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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Story] "나도 살아야지" 짝짓기 상대를 '독'으로 마비시키는 문어가 있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150호 2025년 04월 28일동물의 짝짓기는 종족 번식을 위한 본능적 행동이지만, 때로는 생존과 직결된 위험한 행동이다. 암컷이 수컷보다 큰 동물 종에선 수컷이 짝짓기를 위해 암컷에게 먹히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런데 최근 호주 퀸즐랜드대학교 뇌연구소의 저스틴 마셜(Justin Marshall) 석좌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파란선문어는 짝짓기 중 사망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독특한 전략을 개발했다. 바로 짝짓기 전과 도중, 자신의 독으로 암컷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수컷 파란선문어는 왜 이런 전략을 세운 걸까?
모든 수컷이 희생하는 건 아니다?
암컷이 짝짓기 도중 수컷을 잡아먹는 ‘성적 동종포식(sexual cannibalism)’ 현상은 자연에서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사마귀다. 수컷 사마귀 약 60%는 짝짓기 전에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위험을 감수한다. 검은과부거미도 비슷한 상황을 마주한다. 겉보기엔 잔혹하게 느껴지지만, 진화적 관점에선 번식 성공률을 높이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이 행위를 통해 암컷은 산란에 필요한 영양분을 얻어 알의 생존율을 높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수컷이 이러한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2021년 뉴질랜드 오클랜드대학교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스프링복사마귀(Miomantis caffra) 수컷은 암컷과 몸싸움을 벌여 생존 확률을 높인다. 몸싸움에서 58%는 수컷이 승리했고, 승리 시 67%는 짝짓기에 성공했다. 그중 절반은 짝짓기에 성공한 뒤에도 살아남은 것으로 확인된다. 즉, 모두가 수동적인 희생을 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사진 2. 스프링복사마귀 수컷은 짝짓기 중 생존하기 위해 암컷과 전투를 벌인다. ⓒshutterstock
더 많은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한 전략!
운명을 거스르는 행동은 파란선문어(Hapalochlaena fasciata)에게서도 관찰할 수 있다. 보통 문어도 암컷이 수컷보다 크기 때문에 짝짓기 중 수컷이 잡아 먹힐 위험이 있다. 게다가 암컷 문어는 짝짓기 후 몇 주 동안 먹이도 먹지 않고 알을 돌보므로,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 성적 동종포식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퀸즐랜드대 연구팀의 조사 결과, 파란선문어의 수컷은 짝짓기 중 독특한 행동을 통해 성적 동종포식을 피했다. 바로 암컷의 대동맥을 물어 테트로도톡신이라는 강력한 신경독을 주입한 것이다. 복어 독으로 유명한 이 독소는 소량으로도 사람의 목숨을 위협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암컷 파란선문어는 이 독에 대한 내성을 가졌기 때문에 마비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그친다.
수컷 파란선문어가 암컷에게 독을 주입하면 암컷 문어의 피부가 창백해지고, 동공이 확장된다. 이 증세는 1시간 동안 이어지기 때문에 수컷이 안전하게 도망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즉 수컷 파란선문어는 암컷으로부터 안전히 도망쳐 더 많은 암컷과 만날 기회를 얻게 된다. 한 번의 짝짓기 후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다른 수컷 문어들보다 유전자를 퍼뜨리기 유리해지는 셈이다.
이러한 사례는 성적 동종포식과 같은 행동도 번식을 위해 진화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보여줄 뿐 아니라, 생존을 위해선 새로운 전략이 제시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조차 전략이 되는 자연의 세계. 그 속에서 우리는 생명의 경이로움과 진화의 냉정함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글 : 김민재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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