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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Story] 치매 정복 한 걸음 더…세계 최대 단백질 데이터 완성
<KISTI의 과학향기> 제3174호 2025년 08월 18일현대 의학과 과학의 발달에도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과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을 치료할 방법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이들 질환은 질병 기전에 대해 밝혀진 바가 많지 않고 초기 진단이 어려운 등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는 데 어려움이 많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 세계 치매 환자 수는 약 5,700만 명에 이르며, 우리나라의 경우 2025년 기준 환자 수가 97만 명으로 집계되어 이듬해 100만 명을 넘길 것으로 예측된다.
사진 1. 신경퇴행성 질환을 앓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초기 진단이 어려워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Shutterstock
이러한 가운데 알츠하이머병 연구에 큰 전환점이 될 만한 대규모 단백질 데이터가 발표되었다. 미국, 유럽, 호주 등 공공 및 민간 기관 23곳이 참여한 ‘글로벌 신경퇴행성 단백질학 컨소시엄(GNPC)’은 신경퇴행성 질환의 진단과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단백질 데이터세트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이어 연구팀은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전두측두엽 치매, 근위축성측삭경화증(루게릭병) 등 대표 질환과 관련된 분석 결과를 네 편의 논문으로 정리했다. 이 논문들은 지난 7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나란히 게재됐다.
더 빠른 진단을 위한 대규모 생체 데이터
“알츠하이머병 진단이 더는 사형선고가 아닌 날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 빌 게이츠가 최근 자신의 칼럼에 남긴 말이다. 2020년 알츠하이머병으로 부친을 잃은 그는 2023년 게이츠 재단의 이름으로 미국 제약사 존슨앤존슨과 함께 GNPC를 공동 설립했다. 현재 통용되는 알츠하이머병 진단법은 PET 스캔과 뇌척수액 검사 정도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증상이 나타난 후에 뒤늦게 진행되는 것으로 병세의 악화를 막는 데 큰 효과가 없다. 이에 빌 게이츠는 이미 발병한 뒤의 증상이 아닌 개별 질환과 관련된 바이오마커를 찾아 병에 조기 개입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사진 2. GNPC는 23개 참여 기관에서 4만 개 이상의 환자 샘플을 수집해 첫 번째 버전의 통합 데이터세트를 구축, 공유했다. 이는 신경퇴행성 질환 연구에 있어 세계 최대 규모다. ⓒGNPC 홈페이지
서로 다른 인구 집단과 환경에서 얻은 대규모 단백질 데이터는 조기 진단용 바이오마커 연구를 위한 기반으로 작용한다. 통합 데이터세트를 분석하면 개별 신경퇴행성 질환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단백질 조합을 비롯해 여러 질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단백질 패턴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GNPC는 참여 기관이 수집한 혈장, 뇌척수액 등 3만 5,000여 건의 생체 시료를 분석해 2억 5,000만 건 이상의 단백질 데이터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대상자가 향후 어떤 질환을 앓게 될 가능성이 있는지, 현재 병이 어느 정도로 진행되었는지 등 지금보다 빠른 진단에 필요한 단서로 사용될 수 있다.
단백질을 분석해 공통된 지표를 찾다
네 편의 연구 중 케이틀린 피니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대 교수가 주축이 된 연구팀은 대표적 알츠하이머병 위험 인자로 꼽히는 대표적인 유전자형 ‘APOE ε4’과 관련된 생체 정보를 살폈다. 이들은 GNPC 데이터세트의 뇌척수액 시료 1,346건과 혈장 시료 9,924건을 인공지능에 학습시켜 여러 신경퇴행성 질환에서 공통으로 작동하는 지표를 발견했다. 이 지표는 염증성 면역 및 감염 경로뿐 아니라 단핵구, T세포, NK세포 등 면역 세포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APOE ε4 유전자형을 보유한 사람은 질병 유형과 관계없이 면역 반응이 과도하게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발병에는 고혈압이나 흡연 같은 생활 습관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카를로스 크루차가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교수 연구팀은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전두측두엽 치매 환자 각각에게서 특징적인 혈장 생체 지표와 단백질 특성에 주목했다. 또 토니 와이스-코레이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중심의 연구팀은 인지 기능과 관련된 단백질이 노화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분석했다. 이러한 접근은 혈장과 뇌척수액의 단백질 수치와 인지 건강의 관계를 밝히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이번에 GNPC가 공개한 단백질 데이터세트는 생체 데이터 기반의 치매 연구를 촉진하기 위한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연구진은 신경퇴행성 질환 연구의 가속화를 위한 국제적인 협력과 데이터 공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번 연구에 활용한 첫 번째 버전의 데이터세트를 GNPC 홈페이지(https://www.neuroproteome.org/new-harmonized-data-set)에 공개했다. 다음 버전의 데이터세트에는 최소 1만 개 이상의 생체 시료가 추가될 예정이다.
빌 게이츠는 혈액 기반 진단, 승인된 항체 치료법 그리고 GNPC의 단백질 세트가 치매 정복을 위한 새로운 흐름이 될 수 있으리라 강조한다. 외따로 떨어져 미지의 질환을 파고들어야 했던 지난 세기와 달리 오늘날 연구는 전 세계 과학자들의 발 빠른 협력으로 추진력을 얻고 있다. 인류의 오랜 난제인 치매 역시 새로운 접근을 통해 막힌 문을 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 : 맹미선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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