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향기 Story
- 스토리
스토리
[과학향기 Story] 다이어트 고민, 부작용 싹 없앤 ‘녹차 비만약’으로 해결?
<KISTI의 과학향기> 제3186호 2025년 10월 13일기름진 전과 잡채, 산적, 송편까지… 연휴 내내 군침 도는 명절 음식을 먹었더니 체중이 신경 쓰인다. 거울 앞에 서서 ‘다이어트를 시작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도 많을 터. 보통은 운동이나 식단 조절을 시작하지만, 요즘은 위고비(Wegovy), 마운자로(Mounjaro) 등 ‘비만 치료제’를 떠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는 본래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지만, 뇌에 포만감을 유도해 체중 감량 효과까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이어트 혁신약’으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복용 여부는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메스꺼움, 설사, 극심한 피로는 물론 장기 복용 시 췌장염이나 위장관 장애 등 각종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지난 4월 중국 쓰촨대학교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셀 바이오머티어리얼즈(Cell Biomaterials)’에 발표한 새로운 천연 비만 치료제가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치료제는 녹차와 해조류에서 얻은 성분을 활용해 음식 속 지방을 흡수한 뒤 체외로 배출한다. 최근 유행하는 비만약처럼 호르몬에 작용해 식욕을 줄이는 방식이 아닌 지방 자체를 없애준다는 점, 인위적으로 식사량을 줄이지 않아도 되는 점 등이 부각되며 주목받고 있다.
버블티 펄처럼 생긴 입자가 지방을 사냥한다?
연구팀이 개발한 치료제는 둥근 미세입자 형태로, 크기는 머리카락 굵기의 5~6배인 500~600마이크로미터(μm)다. 육안으로 보면 버블티에 들어있는 타피오카 펄처럼 생겼다. 주요 성분은 녹차의 떫은맛을 내는 카테킨(EGCG),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해조류에서 얻는 알긴산, 그리고 비타민E다. 카테킨은 항산화 작용과 지방과 결합하는 성질이 있고, 알긴산은 물과 만나면 쉽게 젤처럼 변하면서 주변 환경의 산성도가 바뀌면 부풀어 오르는 게 특징이다. 여기에 지방과 잘 섞이는 성질을 가진 비타민 E를 더해 전체 입자가 지방을 더욱 단단히 붙잡을 수 있게 했다. 연구팀은 이 세 성분을 화학적으로 결합해 장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미세입자를 만들었다.
이 치료제는 위와 장의 pH(수소 이온 농도 지수) 차이를 이용해 작동한다. 위 속은 강한 산성(pH 1~3)이라 입자가 크게 변화하지 않고 통과한다. 하지만 소장에 이르면 환경이 중성(pH 6~7)에 가까워지는데 이때 알긴산이 반응해 그물망 형태로 부풀어 오른다. 표면이 커진 입자 내부의 카테킨과 알긴산이 지방 분자와 달라붙어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고, 비타민 E가 지방과의 결합을 촉진한다. 이렇게 붙잡힌 지방은 장 세포에 흡수되지 못하고 그대로 대변으로 배출된다. 중요한 건 이 과정에서 단백질이나 탄수화물 같은 다른 영양소는 거의 방해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물 실험 결과에서도 효과가 입증됐다. 연구팀은 쥐를 세 그룹으로 나눠 30일 동안 먹이와 치료제를 달리 먹이며 실험했다. 한 그룹은 단순히 고지방식만 먹였고, 두 번째 그룹은 고지방식과 함께 미세입자를 매일 투여했다. 세 번째 그룹은 기존의 지방 흡수 억제제 ‘올리스타트(Orlistat)’를 투여했다. 30일 후 결과를 비교해 보니 미세입자를 먹은 쥐는 같은 고지방식을 먹었음에도 체중 증가가 약 17% 억제됐다. 아울러 간 조직에서는 지방간 증상이 줄었고, 혈액 검사에서도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졌다.
비교군으로 쓰인 올리스타트는 음식 속 지방 분해 효소를 억제해 흡수를 막는 약이다. 하지만 흡수되지 못한 지방이 그대로 대장으로 넘어가면서 설사, 복통, 기름진 변 같은 부작용이 흔하게 발생한다. 반면 새로 개발한 미세입자는 지방을 선택적으로 흡착해 배설시키는 방식이라 같은 지방 차단 효과를 내면서도 이런 부작용이 거의 없었다. 기름기는 잘 빼내면서도 속을 뒤집지 않는 셈이다.
비만 치료제 대안 될까?
이 연구가 의미 있는 이유는 단순히 체중 감량 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현재 시중의 비만약은 대부분 호르몬을 조절해 식욕을 억제하거나 대사 속도를 바꾸는 방식이라 전신 부작용 위험이 뒤따른다. 반면 해당 치료제는 장에서 지방이 흡수되기 전에 가로채는 ‘물리적 차단’ 방식을 쓴다. 연구팀은 이 치료제가 “식이섬유처럼 오래 복용해도 안전하게 쓸 수 있는 보조제형 비만약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아직은 쥐 실험 단계라 사람에게도 같은 효과와 안전성이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또 체중 감량 효과가 얼마나 장기간 유지될 수 있는지도 확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연에서 얻은 성분으로 부작용 없는 체중 관리 방법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된다.
세계비만연맹(WOF)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성인 비만 인구는 약 10억 명에 이른다. 2035년에는 전 세계 인구 절반이 비만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체중 감량을 위해 약물, 수술, 생활 습관 교정 등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있지만, 모두 장단점이 있다. 중국 연구팀이 개발한 녹차와 해조류를 활용한 천연 비만 치료제가 새로운 선택지를 더할 수 있을까. 건강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살을 뺄 방법에 한 걸음 다가선 것만은 분명하다.
글 : 김우현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유진성 작가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
-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 뭐가 다를까?
- 많은 사람이 최근 일어난 PC방 살인 사건이나 거제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서 범인이 피해자를 잔혹하고 무참하게 살해하고도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 분노했다. 언론에서는 이들을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라 부르며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는 무엇이 다르고 보통 사람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
-
- 저주파 자극기, 계속 써도 괜찮을까?
- 최근 목이나 어깨, 허리 등에 부착해 사용하는 저주파 자극기가 인기다. 물리치료실이 아니라 가정에서 손쉽게 쓸 수 있도록 작고 가벼울 뿐만 아니라 배터리 충전으로 반나절 넘게 작동한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다. SNS를 타고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을 퍼지면서 판매량도 늘고 있다. 저주파 자극기는 전기근육자극(Electrical Muscle Stimu...
-
- 우리 얼굴에 벌레가 산다? 모낭충의 비밀스러운 삶
- 썩 유쾌한 얘기는 아니지만, 우리 피부에는 세균 같은 각종 미생물 외에도 작은 진드기가 살고 있다. 바로 모낭충이다. 모낭충은 인간의 피부에 살면서 번식하고, 세대를 이어 간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신생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의 피부에 모낭충이 산다. 인간의 피부에 사는 모낭충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주로 얼굴의 모낭에 사는...
이 주제의 다른 글
- [과학향기 Story] 귀성길 멀미, 약 대신 음악으로 잡는다?
- [과학향기 for Kids] 척척 붙는 빨판상어의 비법, 접착제로 변신!
- [과학향기 Story] 머리카락 성분으로 만든 치약, 구강 건강 게임체인저 될까
- [과학향기 for Kids] 감자의 탄생 비밀? 바로 토마토에 있었다!
- [과학향기 Story] 사랑은 숨겨도 가려움은 숨길 수 없는 이유
- [과학향기 for Kids] 하늘에서만 똥을 싸는 새가 있다?
- [과학향기 Story] 토마토의 비명에 나방이 등 돌렸다?
- [과학향기 Story] 치매 정복 한 걸음 더…세계 최대 단백질 데이터 완성
- [과학향기 for Kids] 밀렵꾼에게 쫓기는 코뿔소를 지키는 방법은?
- [과학향기 Story] 뱀이 뼈를 먹어도 괜찮은 이유, 장 속 이 세포 덕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