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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과학향기 Story] 잊혀진 이름, 호국영령 신원 밝히는 유해발굴감식단

<KISTI의 과학향기> 제3161호   2025년 06월 23일
“The Forgotten War”
 
이는 민족의 비극이었던 6·25 전쟁을 일컫는 말이다. 앞서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이 워낙 유명한 데다, 뚜렷한 종전 선언 없이 휴전으로 마무리됐기에 특히 미국 내에서 6․25 전쟁은 존재감 없는 전쟁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러나 우리에게 6·25 전쟁은 결코 잊혀진 전쟁이 아니다. 굳이 남북으로 분단된 현 상황을 상기시키지 않더라도, 75년이 지난 지금도 산하와 사람들의 마음속엔 상흔이 깊게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전사자 유해다. 전 국토가 전장이었던 특성상 6․25 전쟁은 이름 모를 산야에, 이름 모를 수많은 유해를 남겼다. 채 수습되지 못한 유해는 12만 3천여 구에 이른다.
 
다행히 이름마저 잊혀진 용사들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2007년 창설된 유해발굴감식단은 첨단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전사자 유해를 조사·발굴하는 동시에 이름을 되찾아주고 있다. 유가족에겐 오랜 기다림의 마침표를 찍고, 국가로선 전사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다.
 
사진 1
사진 1. 유해발굴감식단은 전투 기록 및 증언 등을 통해 6·25 전쟁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하고 신원을 파악한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DNA 대조, 치아 확인, 유품 확인… 다양한 방법 동원
 
75년이란 세월을 넘어 이름을 되찾는 작업엔 다양한 기술이 동원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유전자 검사다. 현장에서 발굴된 유골에서 유전자를 추출하고 PCR로 이를 증폭한 다음, 유가족 DNA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는 작업을 거친다. 이 경우, 유해 발굴 지역의 전투 기록을 기준으로 유가족을 추적해 DNA를 확보하는 작업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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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전사자의 신원 파악을 위해 직계 가족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할 필요가 있다. ⓒShutterstock
 
DNA 확인 외에도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발굴된 유골의 해부학적 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생전 사진과 비교해 신원을 확인하기도 한다. 유골 손상이 심각할 경우, 3D 프린터로 손상 부위를 복원하는 작업을 거쳐 정확도를 높인다.
 
치아 역시 신원확인에 유용하다. 치아는 형태, 크기, 배열, 색상, 상태 등 개체별 특성이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훼손이 심해 유전자 추출이 어려운 경우에도 치아는 비교적 멀쩡해 신원확인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다만 치아 진료 기록이나 X선 사진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현재와 달리 전쟁 당시 사망자에게 관련 기록이 있을 리 없기에, 보통 치아를 정밀 분석한 다음 유가족 증언과 일치 여부로 신원확인에 응용한다.
 
전사자 유품도 신원확인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인식표, 도장 등 신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유품이 유해 근처에 있으면, 신원확인 가능성은 크게 올라간다. 최근엔 수통, 철모 등 그렇지 않은 유품들로부터 정보를 얻는 방법도 등장했다.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지난 2020년부터 DMZ에서 발견된 유품의 보존 처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정확한 보존을 위해 먼저 유품 상태를 정확히 확인하는데, 이때 방사선 비파괴검사, X선 촬영, 현미경 조사 등 각종 방법을 활용한다. 이를 통해 육안으로 확인이 어려웠던 정보가 드러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숟가락에 명기된 이름이 보존 처리 과정에서 새로이 밝혀지며 신원확인의 결정적 단서가 되기도 한다.
 
동위원소 분석, 3D 얼굴 복원… 새 기술 활용에 기대
 
이러한 각종 기술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원확인 성공률이 아직까진 떨어진다는 안타까운 사실이 전해진다. 특히 유전자 검사의 경우, 촌수가 멀어질수록 식별 능력이 떨어진다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 (DNA 시료를 채취한) 유가족과 전사자의 관계가 부모․형제일 경우 높은 확률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정확도가 낮아진다는 의미다. 유가족의 노령화가 상당히 진행된 현재 매우 우려스러운 일인데, 안타깝게도 지금껏 신원확인 된 유해는 230여 위에 머문다.
 
유해발굴감식단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지난 2017년 MOU를 체결했다. 한계를 보이는 DNA 대신 동위원소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동위원소는 DNA보다 오래 보존되고, DNA 추출이 어려운 유해에서도 얻을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특히 분석에 주로 쓰이는 스트론튬(Sr)은 각 지역 동식물은 물론, 토양과 지하수에 따라 고유의 동위원소비를 가진다. 이를 분석하면 생전 고인이 자주 먹었던 음식을 파악할 수 있고, 그에 따라 고향을 판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식습관만으로 고향을 판단하는 것은 오류 가능성이 있고, 수입 사료․비료 사용 등 여러 이유로 조금씩 정밀도가 떨어지기에 이를 극복하는 과제가 있다.
 
최근엔 3D 기술을 동원해 전사자 유해의 얼굴을 복원해 화제가 됐다. 유해발굴감식단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지난 3월 관련 업무협약을 맺고, 6·25 전사자 얼굴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성과로 지난 5월 8일 고 송영환 일병의 얼굴이 복원된 것이다.
 
사진 3
사진 3. 유해발굴감식단과 국과수는 지난 5월 최초로 6․25 전사자의 얼굴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은 복원된 고 송영환 일병의 2D 표준영정 ⓒ국방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먼저 CT로 두개골을 스캔하고, 근육을 하나하나 덧붙이면서 고인의 얼굴을 복원했다. 이는 실종자 얼굴 복원에 사용하는 기술로써, 덕분에 70대 외동딸인 송재숙 씨는 3살 이후 처음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6․25 전사자 신원확인을 위한 다양한 과학기술들을 살펴봤다. 아직도 산야에 흩어진 무명용사들이 하루빨리 이름을 되찾을 수 있기를, 전쟁 75주년을 맞아 간곡히 바라본다. 
 
0623 유해발굴감식단 250x250

 
 
글 : 김청한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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