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과학향기 Story] 인간의 뇌, 와이파이보다 느리다니?

<KISTI의 과학향기> 제3138호   2025년 03월 03일
우리 뇌는 단시간에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적절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생명 활동의 중추다. 길을 걷거나 물을 마시는 간단한 활동을 하는 데에도 무수한 외부 정보를 시시각각 처리하며 기억과 학습 경험 등의 내부 정보를 활용한다. 그렇다면 뇌의 속도는 당연히 빨라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초고속 인터넷만큼은 말이다.
 
지난 1월 국제 학술지 '뉴런'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느림>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한 연구는 뜻밖의 결과를 전한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 연구진은 인간이 전신의 신경계를 통해 정보를 수집할 때와 달리 뇌가 이를 처리할 때의 속도가 초당 10비트(10bps)에 불과하다고 했다. 가정용 무선 공유기가 초당 10~20메가바이트를 처리하며 고화질 영상을 스트리밍할 때 인간의 뇌는 이미지는커녕 짧은 문구 하나를 전달할 수 있는 셈이다. 인간 뇌에는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고, 이들 세포를 약 100조 개의 시냅스가 연결한다. 신경세포로 가득한 뇌가 이러한 ‘반전 결과’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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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그간 뇌의 처리 속도는 빠를 것으로 여겨졌지만, 사실상 무선 공유기보다 느린 것으로 밝혀졌다. ⓒshutterstock
 
아무도 던지지 않은 질문
 
“인간의 뇌는 얼마나 빨리 정보를 처리할까?” 기본 중의 기본으로 보이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껏 없었다. 이번 연구를 수행한 마커스 메이스터 칼텍 생물학 및 생물공학부 교수는 신경과학 입문 수업을 준비하며 연구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뇌에 관한 기본 수치를 알려 주고 싶었지만, 신경계를 통해 정보가 흐르는 속도를 정확히 파악한 사람이 전무했다.
 
연구진은 지각, 운동 능력, 기억력 등 인간의 인지 능력을 측정한 지난 100년간의 기록을 사용해 뇌의 정보 처리 속도를 정량화했다. 뇌의 속도는 일련의 인지 과제를 얼마나 빨리 수행하는가를 통해 파악했다. 예를 들어 주어진 단어를 보고 자판에 입력하는 과제에서 참가자들은 단어의 각 글자를 인식하고, 입력할 키의 순서를 정하고, 이러한 판단을 손가락 근육에 전달해야 한다. 연구진은 정보이론 계산법을 거쳐 과제에 걸리는 시간을 디지털 정보의 최소 단위인 비트(bit)로 환산하는 식으로 뇌의 속도를 추정해 냈다.
 
뛰어난 성취를 만드는 느릿한 뇌
 
이들은 먼저 2018년 핀란드 연구팀이 진행한 1억 3,600만 건의 타이핑 과제를 분석했다. 사람들은 보통 분당 51개 단어를 입력했고, 숙련된 타이피스트나 프로게이머처럼 손이 무척 빠른 소수는 분당 약 120단어까지 입력해 냈다. 계산법에 따라 후자를 환산한 수치는 초당 10비트(10bps)였다. 프로게이머의 손놀림은 눈이 쫓아갈 수 없을 정도이지만, 우리의 어림짐작과 달리 그들의 머릿속은 훨씬 잔잔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는 속도가 정보 처리 속도를 쫓아오지 못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연구진은 ‘블라인드 스피드 큐빙’ 경기와 ‘5분 이진법’ 경기 기록을 추가로 분석했다. 눈을 가린 채 큐브를 맞추는 블라인드 스피드 큐빙은 맨눈으로 큐브를 관찰하는 단계와 눈을 가리고 큐브를 푸는 단계가 구분되어 순수하게 큐브를 파악하는 데 걸린 시간을 떼어 볼 수 있다. 2023년도 세계 기록에서 큐브 지각에 쓰인 뇌의 속도는 11.8 bps에 불과했다. 5분 동안 1과 0으로만 이루어진 긴 문자열을 외우는 5분 이진법은 시각적 기억력을 겨루는 경기다. 세계 기록을 가진 2019년도 챔피언은 총 1,467개의 숫자를 정확히 암송했다. 연구진은 이 수치가 4.9 bps의 속도로 달성된 것으로 추정했다. 이 밖에도 한 세기에 걸쳐 확인된 여러 과제의 측정값은 인간의 인지가 초당 5~20비트의 속도로 기능함을 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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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블라인드 스피드 큐빙, 5분 이진법 경기 등을 통해 뇌의 속도를 측정한 결과, 인간의 인지가 초당 5~20비트에 달함을 밝혀냈다. ⓒshutterstock
 
느림의 역설이라는 또 하나의 수수께끼
 
연구는 또한 뇌와 말초 신경계 사이의 막대한 속도 차에 주목한다. 연구진의 추정에 따르면 한쪽 눈에 있는 수백만 개의 광수용체 세포는 16억 bps의 속도로 정보를 전송한다. 사고 처리량과 정보 수집량이 1억 배 이상 차이 나는 것이다. 이토록 느린 인간의 사고 속도는 우리가 방대한 정보 중 극히 일부만을 선취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연구진이 강조한 ‘느림의 역설’은 뇌의 무한한 가능성에 기대는 대중적인 메타포에 반론을 제기한다. 일론 머스크 등이 설립한 미국의 신경과학 기업 뉴럴링크는 대화나 채팅을 거치지 않고 뇌와 컴퓨터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개발 중이다. 그러나 메이스터 교수는 “실제 인간의 뇌는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느리게 처리할 뿐”이라고 말한다. 설사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기존의 통신 기기를 쓸 때보다 빠르게 소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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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일각에선 뇌와 컴퓨터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개발 중이나, 이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기존의 통신 기기를 쓸 때보다 빠르게 소통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shutterstock
 
뇌가 한 번에 수천 개의 항목을 동시 처리하는 신경계와 달리 작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과거 수렵채집 시절 인류가 먹을거리를 찾거나 포식자를 피하는 한 가지 행동에 집중했던 패턴이 남은 것일 수 있다. 수십억 개의 뉴런을 가진 전두엽 피질이 10 bps로 정보를 처리하는 이유는 뇌가 작업을 자주 전환하고 여러 회로에서 정보를 통합해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해석과 가설을 검증하려면 더욱 정확한 연구가 필요하다. 뇌 이론의 최종 목표가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을 설명하는 데 있다면, 느림의 역설 역시 충분히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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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맹미선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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