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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과학향기 Story] 뜨거운 커피는 이제 그만! 초음파로 만드는 상온 에스프레소

<KISTI의 과학향기> 제3056호   2026년 08월 03일
커피 원액인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려면 90℃가 넘는 물과 9기압이 넘는 압력이 필요하다. 뜨거운 물이 원두 알갱이 사이를 강하게 파고들어야 기름, 카페인, 향 성분이 짧은 시간 안에 녹아 들어 특유의 진하고 걸쭉한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맛있는 에스프레소 = 뜨거운 물 + 강한 압력’이라는 공식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이 ‘커피 상식’을 깨뜨리는 연구가 나왔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UNSW) 연구팀이 최근 국제학술지 ‘저널 오브 푸드 엔지니어링(Journal of Food Engineering)’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약 22℃의 정도의 물만 있어도 사실상 맛 차이가 거의 없는 에스프레소를 뽑아낼 수 있다. 시간도 단 2~3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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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초음파를 이용해 커피를 추출하고 있는 연구원. ⓒUNSW/Richard Freeman
 
상온에서 뽑아도 에스프레소 맛이 날까?
 
이 상온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비결은 바로 ‘초음파’다. 사람의 귀는 보통 초당 진동수(주파수, Hz)가 2만 번을 넘어가는 소리는 듣지 못한다. 연구팀은 초당 4만 2600번(42.6kHz) 진동하는 뿔 모양의 초음파 장치를 이용했다. 이 장치는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기 전 원두 가루를 담는 도구인 ‘포터 필터’ 옆면에 붙인 후 작동시키면 포터 필터의 벽 전체가 마치 스피커의 진동판처럼 진동한다. 이때 상온의 물을 부으면 초음파의 미세한 떨림이 물 입자를 흔들고, 아주 작은 기포가 끊임없이 생겼다가 터지기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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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초음파로 어떻게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지 도식화한 그림. ⓒScience Direct
 
기포가 터지는 순간 발생하는 충격파가 원두 입자 표면을 미세하게 깎아내면 원두 속에 갇혀 있던 기름 성분과 향, 카페인 등이 물속으로 녹아드는 공동현상(Cavitation)이 발생한다. 안경을 초음파 세척기에 넣으면 손으로 문지르지 않아도 먼지와 기름때가 떨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연구팀은 이 힘이 얼마나 강한지 확인하기 위해 커피 대신 얇은 알루미늄 포일을 포터 필터에 넣고 초음파를 조사했다. 그 결과 불과 몇 분 만에 포일 표면에 수많은 움푹 팬 자국이 생길 정도로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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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초음파가 원두 추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고자, 알루미늄 포일을 필터에 넣고 기계를 가동했다. (왼쪽) 그 결과, 포일 표면에 움푹 팬 자국이 생겼다. (오른쪽) ⓒScience Direct
 
연구팀은 공동현상이 뜨거운 물과 높은 압력을 대체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원두 입자의 크기, 물의 양, 초음파의 세기 및 노출 시간을 바꿔가며 에스프레소를 추출한 후 두 가지 지표를 측정했다. 하나는 물에 녹아든 커피 성분의 양이 전체 에스프레소에서 차지하는 비율(총용존고형물, TDS)이고, 다른 하나는 원두에 들어 있던 성분 중 물로 빠져나온 비율 보여주는 추출 수율(EY)이다. 총용존고형물은 커피의 진하기를 나타내고, 추출 수율은 원두 속 성분을 얼마나 알뜰하게 뽑아냈는지를 나타낸다.
 
원두를 아주 곱게 갈고 초음파를 충분히 쐬어주자 두 지표 모두 기존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뽑은 커피와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다. 특히 추출 수율은 세계적인 커피 전문가 단체인 스페셜티커피협회(SCA)가 ‘맛의 균형이 잘 잡힌 커피’라고 정해놓은 기준(18~22%)에 들었다. 반대로 초음파 없이 상온의 물만 흘려보내면 시간이 오래 지나도 이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뜨거운 물과 압력이 하던 일을 초음파가 대신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실제로 느끼는 맛의 차이는 없었을까. 연구팀은 커피를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마시는 성인 100명을 대상으로 어느 커피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알려주지 않은 채 향, 맛, 쓴맛, 전체 만족도를 점수로 매기게 하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전통 방식으로 뽑은 에스프레소와 초음파로 뽑은 에스프레소 사이에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좋은지 직접 고르라고 했을 때도 참가자들은 뚜렷하게 한쪽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카페인 함량, 신맛과 관련된 항산화 성분인 클로로젠산, 커피의 색깔, 산성도를 나타내는 산도(pH), 향을 만드는 여러 휘발성 성분까지 실험실에서 화학적으로 하나하나 뜯어봐도 두 커피는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에스프레소보다 많은 물을 사용해 추출하는 필터 커피(드립커피)에서는 초음파로 만든 쪽이 쓴맛과 전체 만족도에서 더 좋은 점수를 받았다. 직접 고르게 했을 때도 참가자의 61%가 초음파 필터 커피를, 32%가 기존 방식을 선택했다.
 
에너지 소비를 줄인 새로운 커피 추출법
 
이 연구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에너지 소모량 때문이다. 연구팀이 두 가지 방식으로 커피를 만들면서 전기 사용량을 재봤더니 초음파 방식은 기존 에스프레소 머신이 쓴 전력의 24.3%밖에 쓰지 않았다. 에너지의 약 75%를 아낀 셈이다. 일반 에스프레소 머신은 커피를 내리지 않는 순간에도 보일러 속 물을 90℃ 이상으로 계속 데워 유지해야 하기에 많은 전력을 소모한다. 반면 초음파 방식은 물을 데울 필요가 없으니 전기 부담을 통째로 덜어낼 수 있다.
 
물론 초음파 에스프레소를 상용화하려면 넘어야 할 과제도 있다. 연구팀이 개발한 시제품은 초음파로 인해 잘게 부서진 커피 입자가 추출 장치를 막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종이 필터를 사용했다. 하지만 일반 에스프레소 머신은 금속 필터를 사용해 커피 오일과 크레마 (에스프레소 위에 뜨는 갈색 거품층)까지 함께 추출하기 때문에 맛과 질감에서 차이가 생길 수 있다. 또한 아직은 실험실 단계의 시제품인 만큼 장기간 사용해도 성능이 유지되는지, 매번 같은 맛을 안정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도 더 필요하다.
 
그럼에도 기대되는 이유는 이 장치가 추출 조건을 조절해 에스프레소처럼 진한 커피부터 필터커피처럼 연한 커피까지 다양한 농도의 커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존 에스프레소 머신보다 전력 소비도 크게 줄일 수 있어 상용화된다면 카페는 물론 가정용 커피 머신의 새로운 대안이 될지 모른다.
 
0803 에스프레소 250x250
 
 
[용어 풀이]
1) 초음파 :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보다 주파수가 더 높은 소리의 파동을 일컫는다.
2) 포터필터 :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때 원두 가루를 담는 필터.
 
[참고자료]
Ultrasound enables espresso-strength coffee brewing in 2–3 minutes at low temperature with lower energy consumption
 
글 : 김우현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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