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향기 Story
- 스토리
스토리
[과학향기 Story] 과학적으로 '완벽한' 치즈 파스타 만들기
<KISTI의 과학향기> 제3167호 2025년 07월 14일파스타는 라면과 더불어 요리를 잘 못하는 사람도 뚝딱 만들 수 있는 음식 중 하나다. 그런 한편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딱 알맞게 익혀낸 면에 신선하고 진귀한 재료를 활용하여 비싼 값에 내어놓기도 한다. 양식의 기본 중의 기본인 만큼, 전 세계 사람이 자신만의 조리법을 무수히 공유하고 있다.
물리학자들 역시 그들만의 방식으로 요리법을 내놓았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 물리학자를 비롯한 다국적 연구팀은 이탈리아의 전통 치즈 파스타 ‘카초 에 페페’를 과학적으로 가장 안정되게 조리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이 연구는 연초 무료 논문 저장 사이트 ‘아카이브(arXib)’에 올라온 후 지난 4월 유체역학 분야 국제 학술지 《Physics of Fluids》에 정식 게재됐다. 과학자들은 왜 치즈 파스타에 주목했고, 어떤 방법으로 최상의 조리법을 찾았을까?
치즈 파스타를 망치는 이유
카초 에 페페는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개발된 전통적인 파스타 요리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으로 토마토가 전파되기 전, 양몰이를 하며 끼니를 간단히 해결하려 한 이탈리아의 목동들이 삶은 면에 ‘카초(치즈)’와 ‘페페(후추)’를 넣어 레시피를 만들었다. 이 요리의 핵심은 면에 치즈를 올려 먹는 것이 아니라 고형 치즈를 듬뿍 갈아내어 소스로 활용하는 데 있다. 여기에 익힌 토마토나 계란과 관찰레 등을 넣으면 우리가 흔히 아는 파스타의 모습이 되니, 카초 에 페페는 오늘날 파스타들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언뜻 너무나 만들기 쉬워 보이는 카초 에 페페에는 의외로 ‘난이도 최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사실 고형인 치즈를 소스로 쓰려면 크림이나 버터같이 치즈의 유화(乳化)를 돕는 보조 재료가 있어야 한다. 즉 서로 섞이지 않는 액체를 섞이게 만드는 재료가 필요하단 소리다. 이런 재료가 빠진 카초 에 페페는 오직 요리사의 감에 기대야 한다. 국물 없이 꾸덕꾸덕하고 간간이 치즈가 늘어나는 점도가 치즈 소스의 이상이라면, 실제 조리에서는 치즈가 면수와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놀거나 떡처럼 뭉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연구팀은 이러한 소스의 상변화에 주목했다. 이들은 치즈가 어떤 조건에서 유화 상태를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점성이 생기는지를 확인하고자 물의 온도, 전분과 치즈 단백질 농도, 조리 시간 등을 바꾸어 가며 실험했다.
이상적인 소스를 위한 조건
‘망한 카초 에 페페’의 사례 중 하나는 치즈가 소스가 되지 못하고 덩어리로 뭉쳐버리는 경우다. 이 문제는 면의 전분이 풀어진 면수가 치즈의 단백질 응집을 촉진하면서 발생한다. 전분 농도가 1퍼센트 미만으로 적으면 소스는 물과 기름이 나뉘듯 층이 분리되어 버리고, 4퍼센트를 초과하면 치즈 단백질이 너무 뭉쳐 소스가 뻑뻑하고 단단해진다. 적절한 전분 농도는 소스가 흐르면서도 한 덩어리처럼 유지되는 이상적인 질감의 핵심이다.
연구팀은 전분 농도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추려 실험을 설계했다. 우선 물 온도와 전분 농도를 조정해 최적의 조건을 찾으려 했다. 물 온도는 50도에서 95도까지 5도씩 구분하고, 전분 농도는 순수한 물과 일반 면수, 면수를 졸여 전분을 농축한 것 세 유형으로 구분해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순수한 물에서는 65도 부근에서 치즈가 급격히 뭉치기 시작한 반면, 일반 면수나 졸인 면수는 70도에서 95도까지 온도가 높아지더라도 비교적 형태가 유지되었다.
치즈의 단백질 농도 역시 유화에 영향을 미친다. 연구팀은 전분 농도를 고정한 뒤 물과 치즈의 비율 그리고 온도를 달리해 소스의 상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전분 농도가 동일할 때 온도가 60도 정도로 너무 높지 않고, 치즈와 물이 거의 일 대 일 비율일 때 소스가 쉽게 뭉치거나 분리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리사의 ‘감’을 정량화하다
일련의 실험을 통해 연구팀이 제시하는 최상의 카초 에 페페 레시피는 이렇다. 파스타 300그램에 치즈 200그램을 준비한다. 면은 토나렐리를 추천하지만 스파게티나 리가토니도 좋고, 치즈는 전통대로 약간 짭짤한 페코리노 로마노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 최적의 전분 농도를 맞추기 위한 ‘킥’은 감자 전분이나 옥수수 전분 5g이다. 졸인 면수를 쓸 수도 있지만 조리 과정에서 농도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전분 젤이라는 더 안정적인 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소스를 만들기 위해 먼저 전분을 물 50그램에 잘 녹이고, 약불에 천천히 가열해 젤처럼 만든다. 여기에 물 100그램을 추가하고, 잘게 간 치즈와 미리 볶아둔 통후추를 넣어 잘 섞어 주면 먹기 좋은 형태의 치즈 소스가 나온다. 파스타 면은 알 덴테로 삶아 1분간 식힌다. 너무 뜨거우면 소스가 분리될 수 있다. 한 김 뺀 면에 치즈 소스를 넣고 섞되, 소스가 너무 되거나 질면 면수로 점도를 조절한다.
최적의 파스타 레시피를 찾기 위한 실험은 무형의 기술로 전수되는 레시피를 과학적으로 정량화해 누구나 쓸 수 있도록 한다. 연구팀이 제안한 조리법은 재가열 내성이 뛰어나 대량으로 만들거나 다시 데워서 먹어도 치즈가 뭉치거나 분리되는 현상을 줄여주기도 한다. 오랜 전통의 파스타를 실패 없이 만들어 먹고 싶다면 과학자의 제안을 따라 보면 어떨까.
글 : 맹미선 과학 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
-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 뭐가 다를까?
- 많은 사람이 최근 일어난 PC방 살인 사건이나 거제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서 범인이 피해자를 잔혹하고 무참하게 살해하고도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 분노했다. 언론에서는 이들을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라 부르며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는 무엇이 다르고 보통 사람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
-
- [과학향기 Story] 토마토의 비명에 나방이 등 돌렸다?
- 기후 위기로 인한 폭우와 불볕더위로 여름마다 ‘역대급’ 더위를 겪고 있다. 연일 35도를 웃도는 기온에 사람들은 에어컨이 없으면 견디기 힘들어하고, 열사병과 온열질환 환자가 급증한다. 하지만 이런 극한의 더위는 사람만의 고통이 아니다. 가로수는 잎사귀를 말리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공원의 화단은 매일 물을 줘도 시들어 간다. 농작물은 뜨거운 햇볕에...
-
- 저주파 자극기, 계속 써도 괜찮을까?
- 최근 목이나 어깨, 허리 등에 부착해 사용하는 저주파 자극기가 인기다. 물리치료실이 아니라 가정에서 손쉽게 쓸 수 있도록 작고 가벼울 뿐만 아니라 배터리 충전으로 반나절 넘게 작동한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다. SNS를 타고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을 퍼지면서 판매량도 늘고 있다. 저주파 자극기는 전기근육자극(Electrical Muscle Stimu...
이 주제의 다른 글
- [과학향기 Story] 물리학으로 파헤친 박수의 비밀…박수 소리로 개인 식별도 가능?!
- [과학향기 Story] 차 한 잔에 중금속이 줄었다? 찻잎의 숨겨진 능력!
- [과학향기Story] 칠흑같이 깜깜한 우주…그래서 얼마나 어두운데?
- [과학향기 Story] 인공지능이 맛보는 위스키의 미래
- [과학향기 for Kids] 촉각으로 더 생생해지는 가상현실 세계
- [과학향기 Story] 동물도 술을 즐겨 마신다?
- [과학향기 Story] 인류의 탄수화물 사랑, 80만 년 전부터 시작됐다?
- [과학향기 Story] 스페이스X 스타십, 집으로 돌아와 주차까지 완료!
- [과학향기 for Kids] 수력 엘리베이터로 피라미드를 건설했다고?
- [과학향기 for Kids] 데이터로 운영하는 미래 농장, 스마트 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