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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Story] 뇌 없는 해파리도 잠을 잔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034호 2026년 03월 02일수면이라는 현상은 사실 놀라운 것이다. 포식자의 위협이 도사리는 자연에서 의식을 잃고 무방비 상태로 누워 있다는 것 자체가 생존에 있어 위험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면이라는 행위가 자연 선택됐다는 사실은 수면이 동물의 생존과 번식에 매우 중요한 행동임을 시사한다. 실제로 많은 연구를 통해 인간을 비롯한 동물의 신체는 수면 중 에너지를 회복하고, 뇌 속의 노폐물을 청소하며, 손상된 세포를 복구하는 유지보수 작업을 수행하는 것을 밝혀냈다.
그렇다면 뇌와 신경계가 없는 동물도 잠을 잘까? 최근 이스라엘 바일란대 생명과학과 연구팀은 뇌도 심장도 없는 원시적인 동물 해파리도 인간처럼 잠을 잔다는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것도 하루의 3분의 1인 8시간 이상을 잠으로 보낸다는 사실도 나타났다. 복잡한 뇌 구조를 가진 인간부터 아주 단순한 신경망만을 가진 해파리까지, 종을 불문하고 수면이 이토록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점은 수면의 기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으며 생명 유지에 있어 절대적인 기능을 가진 요소임을 보여준다.
잠은 생명의 시작부터 존재했을지 모른다?
연구팀은 원시적인 신경망을 가진 자포동물인 해파리(Cassiopea andromeda)와 말미잘(Nematostella vectensis)을 통해 수면의 기원을 추적했다. 그런데 해파리와 말미잘이 잠을 자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먼저 연구팀은 해파리와 말미잘의 움직임과 반응 속도를 정밀하게 분석해 수면의 기준을 정의했다. 주로 낮에 활동하는 해파리의 몸체 수축 운동은 낮 동안 분당 평균 36.4회였으나, 밤에는 분당 평균 31.9회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에 연구팀은 최적화 알고리즘을 통해 분당 37회 미만의 박동이 3분 이상 지속될 때를 수면 상태로 규정했다. 수면 상태의 해파리는 빛 자극을 줄 때 반응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한편, 해 질 녘에 주로 활동하는 말미잘은 움직임이 멈춘 상태가 8분 이상 지속될 때를 수면 상태로 보았다. 말미잘 역시 이 상태에선 먹이나 빛 자극을 줘도 그 반응이 매우 더뎠다.
흥미로운 점은 이 원시 생명체들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하루의 약 3분의 1, 즉 8시간 정도를 잠으로 보냈다. 이 사실은 수면 시간에도 진화적 보편성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특히 해파리는 실험실 환경이 아닌 야생 서식지에서도 정오 무렵 짧은 낮잠을 즐기는 인간 같은 생활 방식을 보여줬다. 수면 조절 방식은 두 생물 간 차이도 두드러졌다. 해파리는 주로 빛과 어둠의 주기에 따라 수면 여부가 결정되는 반면, 말미잘은 빛뿐만 아니라 생체 시계에 의해 수면 패턴이 조절됐다.
빛에 의한 조절 방식은 생체 시계보다는 외부 조명이 켜지고 꺼지는 상태에 따라 행동이 즉각적으로 결정됨을 의미한다. 예시로 연구팀은 해파리를 24시간 내내 어두운 환경에 두었을 때 해파리는 언제 자고 깨야 할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뚜렷한 활동 리듬을 잃었다. 특히 해파리가 정오 무렵에 자외선이 강해질 때 낮잠을 자는 것도 생체 시계에 의해 계획된 일정이 아닌, 강한 빛 자극이라는 외부 신호에 반응해 DNA 손상을 수리하고자 즉각적으로 수면 모드에 돌입하는 수동적 방어 기제로 해석된다.
결국, 생체 시계에 의한 조절 방식은 외부의 빛이 있든 없든 생명체 내부에 각인된 유전적 타이머가 스스로 작동해 일정한 주기를 만들어 내는 시스템이다. 연구팀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말미잘을 외부 빛이 전혀 없는 암실에 가뒀으나, 말미잘은 외부 신호가 없음에도 약 22.5시간 주기로 자고 깨는 행동을 반복했다. 특히 연구팀이 ‘시계 유전자’를 고장 낸 돌연변이 말미잘을 관찰했을 때 이들의 수면 리듬이 붕괴하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말미잘의 수면이 단순히 환경에 반응하는 게 아닌, 내장된 유전적 프로그램으로 통제되는 능동적인 과정임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다.
해파리의 방식이 현재 빛 환경에 따라 즉각적으로 몸을 맞추는 수동적인 생존 전략이라면, 말미잘의 생체 시계 방식은 내일 아침이 올 것을 몸이 예측하고 대사 활동을 최적화하는 훨씬 정교한 진화의 결과물이다. 연구팀은 말미잘이 주로 해 질 녘과 새벽에 활동하는 생물인 만큼, 빛이 바뀌는 시점을 예상하고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관리하기 위해 이러한 생체 시계를 발달시킨 것으로 본다. 이는 뇌가 없는 단순한 신경망의 생명체조차 각자의 환경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수명의 타이밍을 조절하는 놀라운 지능을 갖췄음을 보여준다.
또한 연구팀은 인간의 수면을 조절하는 주요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이들에게도 똑같이 작용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실험 결과, 100μM(마이크로몰) 농도의 멜라토닌을 투여하자 해파리와 말미잘 모두 활동기임에도 수면 시간이 늘어나고, 자다가 깨는 현상이 감소해 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 역시 종을 불문하고 수면을 조절하는 화학적 메커니즘이 수억 년 전 공통 조상에서 이어진 진화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잠은 진화적 적응이다
그렇다면 복잡한 뇌도 없는 이들이 포식자의 위협을 무릅쓰고 잠을 자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펠바움 교수팀이 찾아낸 핵심 열쇠는 바로 ‘DNA 복구’에 있었다. 생명체가 깨어 있는 동안에는 자외선이나 신체 활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활성 산소 등으로 인해 신경 세포 내의 DNA에 지속적인 손상이 축적된다. 연구팀은 DNA 손상의 지표인 ‘γH2AX'(DNA 손상을 복구할 때 나타나는 단백질 표지) 수치를 측정했는데 해파리와 말미잘 모두 깨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수치가 최고점에 달했다가 잠을 자고 난 뒤에는 다시 최저점으로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더 나아가 연구팀은 수면 부족과 DNA 손상의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강제로 잠을 깨우는 실험을 진행했다. 해파리를 6시간, 말미잘을 8시간 동안 잠들지 못하게 방해하자 세포 내 DNA 손상이 평소보다 급격히 증가했다. 반대로 자외선을 쬐어 인위적으로 DNA 손상을 일으키자, 이들은 손상된 유전자를 수리하기 위해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잠을 자는 현상을 보였다.
결국 이번 연구는 수면이 단순히 뇌의 휴식을 위한 기능이 아니라 생명의 설계도인 DNA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생존 전략임을 입증했다. 뇌가 출현하기 훨씬 이전인 수억 년 전 바닷속 원시 생명체 때부터 잠은 손상된 유전자를 수리하고 다음 날의 생존을 준비하는 필수적인 의식이었다. 부디 잠을 줄이지 마시라.
[용어 풀이]
1) 자연 선택 : 환경에 적합한 특성을 가진 생물체가 다른 생물체에 비해 좀 더 잘 생존하고 생식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2) 생체시계 : 생명체가 24시간 주기에 맞춰 살아갈 수 있도록 행동과 생리 작용을 조절하는 것이다.
[참고자료]
▶ DNA damage modulates sleep drive in basal cnidarians with divergent chronotypes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5-67400-5)
글 : 권오현 과학 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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