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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Story] 인공지능은 따라올 수 없는 능력, 시계 읽기
<KISTI의 과학향기> 제3165호 2025년 07월 07일“너 설마…. 아직도 제대로 시계 볼 줄 모르는 거야? 그럼, 시간 개념도 모르겠네? 에휴. 자…. 잘 들어봐. 긴 바늘이 한 바퀴 돌면, 짧은 바늘은 한 칸 앞으로 나아가고…. 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앞으로 더 어려운 계산은 어찌하려고... 에휴... 말해 무엇하리. 쉽게 알려주지 못한 내 잘못이지. 이 아빠 탓이야.”
그렇다. 위의 멘트는 몇 년 전, 필자가 당시 유치원에 갓 들어간 귀여운 아들에게 매일 저녁 쏟아내던 하소연이다. 학창 시절,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겠다며 고생깨나 한 나였기에, 아이의 앞날에 꽃길만 가득하길 바랐던 나였기에, 이처럼 닦달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런 한심한 눈길로 나를 보시는가? 기왕 말이 나왔으니, 우리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눠보자. 이런 스트레스가 어디 나만의 것이겠는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누군가의 부모라면, 이게 전혀 이해 못 할 행동인가? 난 그렇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시계 읽는 기술을 터득하는 것은 모든 수학의 시작이오, 그 기술이 자연을 이해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리라는 걸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시계 읽기, 우리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발표된 한 연구 결과를 보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조급해했던 그 시계 읽기가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능력인지를. 그리고 그 능력을 자연스럽게 익혀가는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경이로운 존재인지를.
연구진은 현재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AI 모델 7가지에 간단한 테스트를 했다. 오픈AI의 GPT-4o와 GPT-o1, 구글의 제미나이 2.0, 앤트로픽의 클로드 3.5 소네트, 메타의 라마 3.2, 알리바바의 Qwen 2, 그리고 중국 신생기업 모델베스트의 MiniCPM까지. 이들은 각각 수십억, 수백억 개의 매개변수를 가진 거대한 신경망으로,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생성하는 데는 이미 인간을 능가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받는다.
연구진이 이들에게 내린 과제는 단순했다. 아날로그 시계 이미지를 보여주고 시간을 읽어보라고 한 것이다. 다양한 스타일의 시계들이 준비되었다. 표준적인 시계부터 로마 숫자가 표시된 시계, 검은 바탕의 시계, 초침이 없는 시계, 심지어 화살표 모양의 독특한 바늘을 가진 시계까지.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구글의 제미나이조차 겨우 22.6%의 정답률을 기록했고, 나머지 모델들의 성적은 한 자릿수에 그쳤다. 일부 AI들은 마치 ‘기본값’처럼 특정 시간만을 반복적으로 답하는 기이한 행동까지 보였다. 어떤 시계를 보여줘도 “12시”라고 답하거나, “3시”라고 고집하는 식이었다.
사진 2. 인공지능에게 아날로그 시계와 달력을 건넨 결과, 정확한 시간과 날짜를 언급하지 못했다. ⓒPublished at ICLR 2025 Workshop on Reasoning and Planning for LLMs
이게 무슨 의미일까? 그렇다. 당신의 아이가 유치원에서 받아온 시계 읽기 시험지에서 100점을 맞는 그 순간, 그 아이는 이미 세계 최고의 AI들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능력을 보여준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무엇을 했는가? “겨우 이것도 못 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계를 읽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한 인지 과정의 결합체다. 원형의 시계판에서 12개의 숫자를 인식하고, 길이가 다른 바늘들을 구별하며, 각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이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지금이 바로 간식을 먹을 ‘오후 3시 30분’이라는 추상적 시간 개념으로 변환해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이들이 이 모든 복잡한 과정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자연스럽게 해낸다는 점이다. 마치 숨을 쉬듯이, 것듯이 말이다.
시계 읽기도 진화의 산물?
그렇다면 왜 인간의 아이들은 이렇게 복잡한 일을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을까? 그 답은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역사에 숨어있다.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해 시간과 공간을 정확히 인식하도록 진화해왔다. 언제 사냥을 나가야 하는지, 어디에 먹이가 있는지, 어떤 경로로 집에 돌아가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생사를 가르는 문제였다. 따라서 시공간 인식 능력은 인간 지능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되었다.
반면, 현재의 AI는 이런 진화적 기반이 없다. 텍스트 데이터를 기반으로 훈련된 AI에 시공간 인식은 나중에 추가된 기능일 뿐이다. 그래서 복잡한 수학 문제는 풀 수 있지만, 다섯 살 아이도 하는 시계 읽기는 못 하는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그때 내가 아들에게 화를 낸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내 아들은 이미 세계 최고의 기술도 따라올 수 없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몇 달 후, 아들은 어느 날 갑자기 시계를 완벽하게 읽기 시작했다. 내가 그토록 애써서 가르치려 했던 모든 것들을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이다. 그때 아이가 보여준 환한 미소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빠, 나 이제 시계 볼 줄 알아!”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나의 조급한 설명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과 격려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는 단순히 시계 읽기만 배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배움의 즐거움을 함께 얻었다는 것을.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다.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 고유의 능력들은 여전히 소중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소중해질 수 있다. 이런 능력들은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자산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더 빨리, 더 많이 가르치려고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대신 그들이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는 놀라운 학습 능력을 믿고, 충분한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주면 된다.
지금 AI가 시계도 제대로 못 읽는다는 연구 결과를 보면서, 나는 새삼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 깨닫는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해내는 일들이 사실은 알고 보면, 인류 최고의 기술로도 구현하기 어려운 고차원적 작업이었다.
글 : 권태균 청주대학교 에너지융합공학과 교수, 일러스트 :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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