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과학향기 Story
- 스토리
스토리
[과학향기 Story] 강의실 천장이 높으면 시험을 망친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089호 2024년 08월 26일‘시험을 망쳤어 오 집에 가기 싫었어 열 받아서 오락실에 들어갔어’
다들 한 번쯤 한스밴드의 ‘오락실’ 가사에 공감해 보았을 것이다. 열심히 노력한 것에 비해 낮은 점수를 받은 순간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그런데 최근 시험을 망친 이유를 제시해 주는 흥미로운 연구가 환경심리학 저널 (Journal of Environmental Psychology)에 소개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천장이 높은 곳에서 시험을 응시하게 되면 점수가 낮게 나온다는 것이다. 야속한 점수를 받은 학생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결과다.
사진 1. 천장이 높은 강의실에서 시험을 보면 낮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shutterstock
공간의 형태가 뇌에 영향을 미친다?
공간이 뇌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신경과학자들과 건축가들을 중심으로 위와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신경건축학’이 탄생했다. 예술이나 생활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분야가 사실 ‘과학’과 연관 있음이 밝혀지면서 과학자들에게는 새로운 영감을, 인류에게는 뿌옇게 남아있던 여러 궁금증에 대한 또렷한 해답을 주기 시작했다.
2007년,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연구팀은 천장의 높이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연구팀은 천장이 높은 방에서는 추상적이고 자유로운 사고가 활발해진다고 밝혔다. 반대로 천장이 낮으면 문제 해결에 집중하거나, 결함을 좀 더 꼼꼼하게 살필 수 있다고 한다. 연구팀의 주장에 따르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수술실은 천장이 낮을수록, 창의적이고 대담한 사고가 요구되는 경영진의 집무실은 천장이 높을수록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남호주대학교의 이사벨라 바우어 박사와 디킨대학교 잭린 브로드벤트 교수 연구팀은 천장높이와 강의실 크기가 시험 성적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에 나섰다. 연구팀은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약 8년간에 걸쳐 호주 내 대학 3개 캠퍼스에서 시험을 응시한 학부생 15,400명을 분석했다. 학생들이 시험을 응시한 강의실의 천장높이는 2.79~9.50m였고, 내부 바닥 면적은 38~1,562㎡로 다양했다.
연구팀은 시험 기간, 과목, 이전 성적 등을 고려한 결과, 천장이 높은 방에서 시험을 치른 학생일수록 시험 점수가 예상보다 낮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만 강의실 자체의 규모가 달라서인지 온도, 조명, 소음 등의 뇌와 신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요인들 때문인지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에 연구팀은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온도, 조명, 소음 등을 통제했을 때, 방의 크기가 참가자들의 뇌와 호흡, 심박수 등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더 큰 방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려운 업무에 집중할 때와 같은 뇌 활동이 발생했다.
천장높이, 인지능력 좌우한다
요약하면, 암기한 내용을 서술하는 등 단기간에 높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시험에선 낮은 천장이 좋은 성적을 가져올 수 있다. 다만 에세이를 작성하거나, 창의적인 문제 해결이 요구되는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창의력을 향상하는 천장이 높은 공간이 유리하다. 브로드벤트 교수는 “물리적 환경이 학생의 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을 인지하고, 학생들이 동등한 기회를 얻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방의 크기가 인지능력에 영향을 주는 단열, 온도 순환, 공기질 등에 파장을 미치므로 해당 부분에 대한 검증도 필요하다. 또 공간의 본래 용도와 수험생들 간의 거리 등도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지 추가적인 고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해당 실험이 심리학 전공생들을 대상으로만 이뤄졌기에 타 전공생들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나는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천장높이, 조형물의 구조, 공간의 색깔 등 실내 환경의 특성이 우리의 사고방식과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향후 연구를 통해 효율적이고 학생들의 역량을 끌어낼 수 있는 시험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해 본다.
천장이 높을수록 / 집중력, 성적저하
KISTI의 과학향기
글 : 과학커뮤니케이터 울림, 일러스트 : 유진성 작가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
- [과학향기 Story] 응급 수술의 판을 바꾸다, 의료용 글루건의 탄생
- 공예 작업에 활용되는 글루건이 머지않아 수술실에 등장할지도 모른다. 성균관대 글로벌바이오메디컬공학과 이정승 교수 연구팀은 글루건을 개조해 뼈를 직접 이식할 수 있는 기기를 제작했다. 해당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셀(Cell)의 자매지인 ‘디바이스(Device)’ 9월 5일 게재됐다. 수술실에서 바로 이식할 수 있는 ‘프린팅형 뼈’ 뼈는 가벼운...
-
-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 뭐가 다를까?
- 많은 사람이 최근 일어난 PC방 살인 사건이나 거제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서 범인이 피해자를 잔혹하고 무참하게 살해하고도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 분노했다. 언론에서는 이들을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라 부르며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는 무엇이 다르고 보통 사람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
-
- 우리 얼굴에 벌레가 산다? 모낭충의 비밀스러운 삶
- 썩 유쾌한 얘기는 아니지만, 우리 피부에는 세균 같은 각종 미생물 외에도 작은 진드기가 살고 있다. 바로 모낭충이다. 모낭충은 인간의 피부에 살면서 번식하고, 세대를 이어 간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신생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의 피부에 모낭충이 산다. 인간의 피부에 사는 모낭충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주로 얼굴의 모낭에 사는...
이 주제의 다른 글
- [과학향기 for Kids] 미라의 역사는 1만 4,000년 전부터?
- [과학향기 Story] 활주로에서 우주까지...나만의 ‘개인 로켓’ 시대 개막
- [과학향기 Story] 잊혀진 이름, 호국영령 신원 밝히는 유해발굴감식단
- [과학향기 Story] 계단 오르고 장애물 넘는다?… 자유자재로 변하는 모핑 휠 등장
- [과학향기 for Kids] 수력 엘리베이터로 피라미드를 건설했다고?
- [과학향기 Story] 내 안의 화를 날려 버릴 최고의 방법은?
- 2024년은 청룡의 해, 신화와 과학으로 용의 기원 찾아 삼만 리
- 북한이 쏘아올린 작은 ‘만리경-1호’ 궤도 진입 성공, 성능과 목적은?
- 닷새 천하로 끝난 ChatGPT 아버지 샘 올트먼의 해고 사태, 그 이유와 의의는?
- ‘삭센다에서 위고비, 마운자로까지’ 없어서 못 판다는 비만치료제 돌풍
ScienceON 관련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