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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Story] 계단 오르고 장애물 넘는다?… 자유자재로 변하는 모핑 휠 등장
<KISTI의 과학향기> 제3107호 2024년 11월 04일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서부터 현재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무려 5,500여 년간 인류 문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위대한 발명품이 있다. 회전축과 원형 틀이라는 간단한 구조로 이뤄진 ‘바퀴’다. 바퀴가 등장한 이후, 인류는 장거리 이동과 대량 운송에 큰 이점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사진 1. 바퀴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진화하며, 장거리 이동과 대량 운송에 이점을 제공했다. ⓒshutterstock
바퀴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계속해서 진화했다. 초기에는 두꺼운 나무로 투박하게 만들어졌으나, 얇게 가공한 나무와 쐐기를 사용한 구조로 바뀌었다. 그리고 기원전 1600년 히타이트 제국에서 발명된 바큇살 덕분에 그 효율성과 내구성이 급격히 향상됐다. 또한 고무를 활용한 타이어가 등장한 이후에는 탄성, 강도, 내구성과 같은 성능을 확보하기 위해 점차 다양한 소재가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기술의 진보 덕분에 바퀴는 점점 더 많은 물건을 보다 멀리, 보다 오랫동안 실어 나르고 있다.
그런데 최근, 바퀴는 또다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원형이라는 틀을 뛰어넘어, 장애물을 따라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바퀴가 등장한 것이다. 한국기계연구원은 자유자재로 모양이 변형되는 모핑 휠(Morphing Wheel)을 개발했을 뿐 아니라, 이를 실제 이동체에 적용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모핑 휠은 일반 주행 시에는 단단한 원형을 유지하다, 특정 상황이 되면 말랑해진다. 즉 유연성을 통해 장애물이나 계단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 2. 모핑 휠은 액체 방울의 표면장력을 모사해 표면의 강성을 조절하고, 이를 바탕으로 장애물을 넘는다. ⓒ한국기계연구원
마법 같은 유연성 비결? 표면장력 모사!
모핑 휠이 변형될 수 있는 비결은 표면장력에 있다. 액체의 표면장력은 말 그대로 표면(계면)에 존재하는 장력(당기는 힘)으로서, 전체 부피를 최소화하기 위해 작용한다. 새벽 잎새에 물방울이 동그랗게 맺히는 현상이 표면장력의 대표적 사례다.
연구팀은 이러한 표면장력을 재현하기 위해 모핑 휠의 최외곽 부분에 스마트 체인 블록을 배치했다. 이 체인 블록은 휠의 회전 중심에 위치해 회전력을 발생시키는 휠 허브와 휠의 최외곽 구조를 연결하는 바큇살, 와이어 스포크(Wire spoke)와 연결돼 있다. 이때 휠 허브가 회전하거나 거리가 변하면 그에 맞춰 와이어 스포크가 팽팽해지거나 느슨해진다. 즉 상황에 따라 바퀴 표면에 작용하는 장력이 조절되는 셈이다.
와이어 스포크가 팽팽해지면서 연결된 표면의 블록들을 안쪽으로 강하게 당기면, 휠 최외곽의 스마트 체인 구조는 서로 가깝게 붙어 높은 강성을 유지한다. 이는 액체 방울이 높은 표면장력을 가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반대로 와이어 스포크 구조가 느슨해지면 표면의 강성이 낮아지기 때문에 바퀴의 형태가 유연하게 변한다.
휠체어부터 우주 로버까지… 다양한 활용 기대
모핑 휠은 일반적인 도로와 달리 좁거나 차선이 없는 도로와 같이 바퀴의 활용도를 제한해 왔던 비정형 주행환경을 극복할 기술로 평가받는다. 또한 계단과 문턱을 쉽게 극복할 뿐 아니라, 유연한 강성 변화로 인해 이동 시 발생하는 흔들림까지 잡아줄 수 있다. 이에 모핑 휠이 휠체어에 적용된다면 장애인의 활동 범위를 극적으로 확장하고 편의성을 대폭 향상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연구팀은 모핑 휠 기술을 휠체어에 적용해 보았다. 그 결과, 모핑 휠 기반 휠체어는 바위와 18㎝ 높이의 계단을 극복함으로써 실생활 적용 가능성을 증명했다. 더불어 4륜 기반 이동체에도 모핑 휠을 적용한 결과, 휠 반경의 1.3배 높이에 달하는 장애물까지 안정적으로 극복했다.
사진 3. 모핑 휠을 활용하면 계단 등 기존 바퀴로 주행이 어려웠던 지형을 극복할 수 있다. 이는 장애인 이동권 확보, 재난 구조, 우주 탐사 등 다양하게 활용될 전망이다.
한편 모핑 휠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 외에도, 재난 구조 로봇에도 적극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화재, 방사능과 같은 요인으로 인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재난 현장에는 로봇이 활용된다. 다만 무너진 건물 잔해와 같은 각종 장애물이 빼곡해 로봇 활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에 재난 구조 로봇에 크롤러, 굴착기 팔, 다족 등을 적용해 난관을 극복하려 했으나, 그 어떤 기술도 재난 현장에서 완벽한 주행을 보장하지 못했다. 특히 6족 보행과 크롤러는 오히려 평지 이동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주행 효율은 보장하면서, 비정형 주행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모핑 휠이 새로운 대안으로 각광받을 전망이다. 더 나아가 모핑 휠은 달과 화성 표면을 주행하는 우주 로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인류는 바퀴를 활용하고 이를 개선해 나가며,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물류 유통을 효율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 모핑 휠이라는 새로운 진화를 이룬 바퀴가, 장애인 이동권 확보, 재난 구조, 우주 탐사 등 새로운 영역으로 그 영향력을 넓혀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 : 김청한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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