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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Story] 토마토의 비명에 나방이 등 돌렸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177호 2025년 09월 01일기후 위기로 인한 폭우와 불볕더위로 여름마다 ‘역대급’ 더위를 겪고 있다. 연일 35도를 웃도는 기온에 사람들은 에어컨이 없으면 견디기 힘들어하고, 열사병과 온열질환 환자가 급증한다. 하지만 이런 극한의 더위는 사람만의 고통이 아니다. 가로수는 잎사귀를 말리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공원의 화단은 매일 물을 줘도 시들어 간다. 농작물은 뜨거운 햇볕에 타들어 가고, 산속 나무마저 수분 부족으로 잎을 떨군다. 그렇다. 식물도 무더위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진 1. 동물 뿐만 아니라 식물 역시 무더위 스트레스를 겪는다. ⓒShutterstock
토마토, 스트레스를 받으면 비명을 지른다?
2023년 세계적인 학술지 《셀》에 흥미로운 논문이 하나 실렸다.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초음파 소리를 내며 이 소리가 식물의 상태와 종류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연구진은 소리를 차단하는 상자에 토마토와 담배 식물을 넣었다. 이때 가뭄 스트레스(물을 주지 않은 것)를 겪는 식물, 절단(줄기를 자른 것)한 식물을 준비했을 뿐 아니라, 아무 처리도 하지 않은 식물을 대조군으로 만들었다. 각 식물에는 두 개의 지향성 마이크가 동시에 향하도록 설치되어 전기적 노이즈나 식물 간 간섭으로 인한 오류를 최소화했다. 녹음은 초음파 범위(20~150kHz)를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며, 식물에서 약 10cm 떨어진 거리에서 기록되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실험 결과, 스트레스를 받은 토마토와 담배 식물은 고주파 소리를 내는 것이 확인됐다. 건조 상태에서는 61.6dBSPL, 절단되었을 땐 65.6 dBSPL 정도의 고주파를 냈다. 이때 dBSPL은 ‘데시벨 음압 레벨(decibel Sound Pressure Level)’로서 소리의 강도가 얼마나 큰지 나타낸다. 61.6 dBSPL은 사람의 말소리 강도와 비슷하다. 물론 식물이 내는 소리는 초음파 영역이기 때문에 우리 귀로 들을 수는 없지만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스트레스를 받은 식물은 대조군보다 훨씬 더 많이 소리를 방출했다는 사실이다. 건조한 토마토는 시간당 평균 35.4번, 절단된 토마토는 25.2번가량 소리를 냈지만, 대조군은 시간당 1회 미만의 소리만을 냈다. 연구팀은 토마토와 담배 외에도 밀, 옥수수, 포도나무, 선인장, 괭이밥 등 다양한 식물에서 소리를 기록했으며 토마토의 경우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TMV) 감염과 같은 다른 스트레스 조건에서도 소리가 발생함을 확인했다. 소리의 발생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아직 가설적 단계지만, 물관부에서 공동현상(cavitation)이 일어나 기포가 형성, 팽창, 붕괴하는 과정이 원인으로 추측된다.
토마토의 비명에 동물이 반응한다?
올해에는 재미있는 후속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연구팀은 암컷 나방이 식물이 방출하는 초음파 소리를 산란 결정에 활용한다고 밝혔다. 곤충은 전통적으로 시각, 화학, 촉각, 전기적 신호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식물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공기 중으로 초음파를 방출한다는 사실이 보고되면서 연구진은 곤충이 음향 신호 역시 활용하는지를 탐구했다. 나방의 청각은 주로 박쥐 포식자 회피나 번식 의사소통을 위해 진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식물이 내는 소리가 나방의 청각 범위(20~60kHz)에 속한다.
실험은 초식성 곤충이자 초음파에 민감한 고막을 가진 이집트목화잎나방(Spodoptera littoralis) 암컷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식물을 상자에 넣고 나방이 어떤 식물에 알을 낳는지 살폈다. 실험 결과, 나방은 가뭄 스트레스를 받은 토마토보다 물을 잘 공급받은 신선한 식물에 알을 낳는 것을 선호했다. 나방의 고막을 손상시켜 청력을 잃게 한 경우, 소리 재생 조건과 무음 조건 사이에서 선호 차이가 사라져 나방의 선택이 청각 단서에 기반함을 입증했다.
또한 건강한 식물 두 개를 제공하되 한쪽에서만 가뭄 스트레스를 받은 식물의 소리를 재생했을 때, 암컷은 무음 식물을 선호했다. 이는 나방의 의사결정 과정이 시각, 후각, 촉각 등 여러 감각 단서를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다중 감각 처리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 연구는 다양한 응용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농업 분야에서는 식물이 방출하는 소리를 이용해 수분 상태나 질병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물 사용량을 최대 50%까지 줄이고 수확량을 증대시킬 수 있다. 또한 생태학과 진화 연구 측면에서는 동물이나 다른 식물이 이러한 초음파 소리를 인지하고 반응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식물이 소리에 반응해 가뭄 내성을 높이는 사례가 보고된 만큼, 스트레스받은 이웃 식물의 소리에 적응적으로 반응할 가능성도 크다. 그간 ‘조용한 존재’로 여겨왔던 식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뒤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
다만 해당 연구에는 몇 가지 한계도 존재한다. 실험은 어디까지나 제한된 식물종에 대해서만 수행되었으므로 다른 종에 대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또한 병원균, 저온, 초식동물의 공격, 자외선 노출, 생장 단계 변화 등 다양한 스트레스 조건에서의 소리 발생을 탐구해야 한다. 소리 발생 메커니즘 자체도 아직은 초기 단계의 이해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실험이 음향 상자나 온실 같은 통제된 환경에서 수행되었기에 배경 소음이 훨씬 다양한 야외 환경에서의 녹음과 분석은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글 : 권오현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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