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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과학향기 Story] 우리 몸이 발전소가 된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180호   2025년 09월 15일
“저리 비켜! 더운 데 왜 붙고 난리야! 에어컨 좀 팍팍 틀면 안 돼?”
 
무더운 여름, 사랑하는 사람의 체온마저 답답하고 불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땀에 젖은 팔이 스칠 때 “아, 좀 떨어져 있어 줘”라는 말이 절로 나오곤 한다. 그런데 상상해 보자. 우리 몸에서 흘러나오는 이 열기가 불편한 짐이 아니라, 오히려 전기를 만들어 내는 자원이라면 어떨까? 불쾌한 열이 작은 전등을 밝히고, 손목에 찬 시계를 구동하는 에너지로 바뀐다면, 더위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조금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지만, 이건 더 이상 공상과학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한국의 UNIST 연구진들이 발표한 혁신적인 열전지 기술이 바로 이를 현실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열쇠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사진 1
사진 1. 전자기기를 작동할 수 있을 만큼의 출력을 갖춘 열전지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shutterstock
 
사실 열에서 전기를 만드는 아이디어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세기부터 과학자들은 온도 차이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기술들은 마치 바늘구멍으로 코끼리를 통과시키려는 것만큼이나 비효율적이었다. 겨우 몇 도의 온도 차이로는 손전등 하나 켜기도 어려웠으니까 말이다.
 
구멍 난 양동이 같던 기존 열전지, 어떻게 보완했을까?
 
“그럼, 지금까지 안됐던 이유는 대체 뭐야?”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효율이었다. 기존의 열전지들은 온도 차이를 전기로 바꾸는 과정에서 에너지 대부분을 그냥 날려버렸다. 마치 구멍 뚫린 양동이로 물을 나르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뜨거운 열원이 있어도 실제로 쓸 만한 전력을 얻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UNIST 연구진이 이런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들의 비밀 무기는 PEDOT:PSS라는 전도성 고분자와 철 이온의 절묘한 조합이다. 이름만 들으면 복잡해 보이지만, 원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철 이온이 고분자와 결합하면서 다른 이온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고, 이 자유로워진 이온들이 온도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기존의 고체형 전지의 경우 내부에서 이온이 잘 움직이지 못해 전류가 부족했으나, 이온들이 잘 활보할 수 있게 되면서 출력을 향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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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연구팀은 이온 통로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전해질을 설계해 전체 출력을 향상했다. ⓒRoyal society of chemistry
 
연구진이 달성한 성과는 정말 놀랍다. 온도 1℃ 차이당 무려 40mV 이상의 전압을 생산해 낸 것이다. 이전에는 고작 몇 mV의 전압을 생산한 것을 떠올리면, 이는 마치 자전거에서 F1 경주차로 업그레이드한 것과 같다. 실제로 연구진은 사람의 체온만으로도 1.5V의 전압을 만들어 내는 웨어러블 기기를 시연했다. 일반 건전지와 같은 수준의 전력을 우리 몸에서 나오는 열만으로 생산한 것이다.
 
사진 3

사진 3. 연구팀이 개발한 전지는 전자 기기를 구동할 수 있는 전압을 생산해냈다. ⓒRoyal society of chemistry
 
열전지, 활용처를 넓힐 수 있을까?
 
아직은 LED 조명, 전자시계, 온습도 센서 등을 켜는 것으로 그치지만, 이 기술의 확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체온 정도의 미세한 온도 차이로도 이 정도 전력을 만들 수 있다면, 여름철 야외에서는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름철 도심의 아스팔트 온도는 60℃를 넘나든다. 그늘진 곳과의 온도 차이만 해도 20℃가 넘는다. 이 정도면 도시 전체를 거대한 발전소로 만들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현재 기술로는 대용량 전력을 생산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경제성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기술 발전 속도를 보면 이런 한계들도 머지않아 극복될 것 같다. 무엇보다 이 기술이 제시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중요하다. 문제 자체를 해결책으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 말이다.
 
생각해 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리를 괴롭히던 더위가 오히려 우리를 도와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니. 지금까지 우리는 더위와 전력을 완전히 별개의 문제로 생각해 왔다. 더위는 견뎌야 할 고통이고, 전력은 어딘가에서 가져와야 하는 자원이었다. 하지만, 이 기술은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더위 자체가 전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서, 우리의 사고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다.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오히려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주변 어디에나 에너지가 있다는 것.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것이다.
 
추후 당신이 찜통 같은 더위에 짜증을 내며 에어컨을 틀고 싶어 할 때, 잠시 생각해 보라. 머지않아 그 더위 자체가 에어컨을 돌릴 전력을 공급해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한국 연구진들의 놀라운 발견이 있다는 것을. 한국의 연구진이 개발한 이 혁신적인 열전지 기술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과학의 힘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문제 자체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후끈후끈한 여름 더위가, 언젠가는 우리에게 시원한 바람을 선사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놀라운 역설이 현실이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0915 열전지 250x250

 
 
글 : 권태균 청주대학교 에너지융합공학과 교수,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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