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과학향기 Story] 수면과 뇌 노폐물 청소, 서로 관련 없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071호   2024년 06월 24일
사람은 하루 중 3분의 1은 잠을 자며 보낸다. 수면 중에는 적의 공격에 취약해진다는 약점을 감수해야 하는데도, 우리는 왜 잠을 잘까? 많은 학자가 오랜 시간 잠에 대해 탐구했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리진 못했다. 그저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할 때의 불편과 고통에 대해서만 인지했을 뿐이다. 그러다 현대 과학을 통해 수면 중 뇌가 낮 동안 일어난 일을 처리하고 기억을 저장하며, 조직을 재정비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자는 동안 뇌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하는 작업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수면이나 뇌신경 장애 연구를 위한 중요한 발견으로 꼽힌다.
 
그림1그림 1. 뇌 노폐물 청소는 수면 중에 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shutterstock
 
잠은 뇌 청소 시간…정말?
 
뇌는 하루 종일 분주히 움직이기 때문에 대사 활동 후 찌꺼기나 노폐물이 많이 만들어진다. 찌꺼기가 뇌에 계속 쌓이면 신경세포가 손상돼 치매 등 뇌신경 장애가 유발될 수 있다. 실제로 뇌에 쌓인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 노폐물은 치매 발생과 연관성이 크다. 그렇다면 뇌 속 노폐물 청소는 어떻게 이뤄질까? 우선 뇌척수액이 뇌세포 사이를 순환하며 쓰임을 다한 대사물질이나 단백질, 독소 등 노폐물을 씻어낸다. 마치 물을 뿜어 배관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것과 비슷하다. 노폐물과 섞인 뇌척수액은 림프계로 이동한 후 정맥으로 들어가 혈액을 따라 뇌 밖으로 빠져나온다. 이를 ‘글림프 시스템(glymphatic system)’이라고 하며, 수면 중일 때 글림프 시스템 작용이 활발해진다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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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뇌척수액은 뇌세포 사이 사이를 순환하며 노폐물을 씻어낸다. ⓒshutterstock
 
미국 로체스터대학교 연구진이 2013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이 발견은 동물과 사람에 대한 추가 연구 결과가 쌓이면서 '수면의 역할'에 대한 정설로 자리 잡았다. 더 나아가, 학계에선 수면 시간이 불충분하면 뇌 노폐물 청소가 잘 이뤄지지 않아 치매를 일으킬 수 있다는 가설을 제기해 왔다. 이러한 가설이 만성적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불안을 자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이 같은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연구진은 수면 중에는 깨어 있을 때 보다 뇌의 청소 작용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밝혔다. 해당 연구 결과는 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지난 5월 13일 실렸다.
 
쥐 뇌 속 유체 흐름 속도 측정
 
연구진은 수컷 쥐 뇌의 한 부분에 형광 염료를 주입한 후, 이 염료가 뇌 밖으로 빠져나가는 속도를 측정했다. 뇌파의 변화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뇌척수액의 흐름을 관찰한 기존 연구와 달리 염료를 활용해 체액의 흐름을 직접 관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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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연구진은 뇌에 염료를 주입한 후, 염료가 빠져 나가는 속도를 측정해 노폐물 청소 속도를 비교했다. ⓒnature neuroscience
 
그 결과 염료 배출 속도는 쥐가 깨어 있을 때 비해 잠을 잘 때에는 30%, 마취된 경우 50% 줄어들었다. 연구진은 “자는 동안 뇌 청소 활동이 줄어드는 현상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직 모른다”라며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지 이유를 찾고, 사람에서도 확인해 보는 것이 다음 과제”라고 말했다. 비록 이번 연구에서 수면 중 노폐물 속도가 느리다는 사실이 관찰됐지만, 수면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연구에 참여한 임페리얼칼리지런던 영국치매연구소 빌 위스덴 소장은 “이번 연구가 뇌 내 노폐물 청소가 수면의 주요 이유는 아닐 수 있음을 보였지만, 잠의 중요성은 부정할 수 없다”라며 “잠을 잘 자면 뇌 청소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에는 한계가 있다. 수컷 쥐를 대상으로만 진행했고, 쥐를 몇 시간 동안 강제로 깨어 있게 했다 재우며 뇌 활동을 측정했다는 점이다. 반면 2013년 로체스터대학 연구는 암수 쥐를 모두 대상으로 했고, 쥐의 자연스러운 수면 패턴에 맞춰 뇌 활동을 추적했다. 즉 수면 패턴이 깨진 스트레스로 인해 뇌의 노폐물 제거 작용이 느려졌거나 암컷과 수컷 쥐의 차이가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또 어떤 염료를 뇌의 어느 부위에 넣었는지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뇌는 부위에 따라 각기 다른 노폐물을 만들고, 이에 맞춰 글림프 시스템의 처리 속도나 방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번 연구가 과거 연구와 같은 물질이나 방법론을 쓴 것은 아니기에 직접적으로 비교하기 어려렵다.
 
깨어 있을 때보다 자는 동안 뇌가 노폐물을 더 많이 배출한다는 통념이 사실에 부합하는지는 과학자들이 끊임없이 논쟁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연구로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깨어 있는 동안 활발히 움직이고 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낮 동안 열심히 살고, 밤에 푹 자면 제일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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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세희 과학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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