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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티라노사우루스가 작고 비겁한 사냥꾼이었다고?

<KISTI의 과학향기> 제33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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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노사우루스는 참으로 거대한 육식공룡이다. 코부터 꼬리 끝까지가 약 12미터다. 시내버스와 비슷하다. 몸무게는 최대 9톤까지 나간다. 수컷 흰코뿔소 4마리와 맞먹는다. 이만한 덩치를 유지하려면 하루에 최소 330킬로그램 정도의 고기를 먹어줘야 한다. 근으로 따지면 550근, 무려 삼겹살 2200인분이다.
 
티라노사우루스의 화석이 나오는 지층에서는 이들의 게걸스러운 식사의 흔적이 자주 발견된다. 바로 베어 먹은 자국이 선명한 초식공룡의 뼈들이다. 화석화된 티라노사우루스의 똥도 발견되는데, 그 속은 뼛조각으로 가득하다. 함께 살았던 모든 공룡이 이 포식자의 메뉴에 올라가 있었다. 그래서 티라노사우루스는 ‘공룡의 왕’이라고도 불린다. ‘티라노사우루스 렉스(Tyrannosaurus rex)’란 이름도 라틴어로 ‘폭군 도마뱀 왕’이란 뜻이다. 이들은 지금으로부터 약 6800만 년 전부터 6600만 년 전까지 북아메리카 대륙을 군림했다.
 
눈치 보며 살았던 티라노사우루스의 조상
 
올해 초 학계에 새로운 공룡이 보고됐다. 이름은 모로스(Moros)다. 티라노사우루스가 등장하기 약 2800만 년 전에 살았다. 모로스는 놀랍게도 티라노사우루스의 조상이다. 이름도 라틴어로 ‘파멸의 전조’란 뜻이다. 이름 자체가 이후에 등장할 공룡의 왕을 암시하는 스포일러다. 하지만 티라노사우루스와는 상반되게 모로스는 작고 보잘것없는 공룡이다. 몸길이는 약 3미터, 몸무게는 약 80킬로그램으로 딱 사슴만 한 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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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티라노사우루스(Tyrannosaurus)의 조상, 사슴만 한 모로스(Moros)의 복원도. (출처: http://www.sci-news.com/paleontology/moros-intrepidus-tyrannosaur-06931.html)
 
 
몸집이 작다 보니 모로스는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다. 모로스가 살던 당시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육식공룡은 시아츠(Siats)다. 이 육식공룡은 몸길이가 약 12미터, 몸무게가 약 4톤이다. 티라노사우루스와 크기는 비슷하지만, 몸무게는 절반밖에 되지 않는 날렵한 공룡이다. 이름은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식인괴물 ‘시아츠’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얼핏 보기에 시아츠가 티라노사우루스의 조상으로 더 적합한 것 같다. 하지만 티라노사우루스 계열과 시아츠 계열의 육식공룡은 서로 다른 무리다.
 
시아츠 계열은 이빨이 양옆으로 납작하고 앞뒤로 톱날이 발달했다. 마치 돈가스를 썰 때 사용하는 칼 같다. 살집을 가르는 데 적합하다. 시아츠 계열이 이런 이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먹이 때문이다. 이들은 목긴공룡을 전문으로 사냥하는 공룡이다. 목긴공룡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목이 긴 초식공룡이다. 둘리의 엄마가 바로 목긴공룡이다. 이들은 덩치도 커서 살이 많다. 시아츠의 칼 같은 이빨은 목긴공룡의 두툼한 살집을 가르기에 안성맞춤이다.
 
반면 티라노사우루스 계열은 단면이 D자인 앞니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앞니는 뼈에 붙은 고기를 긁어내는 데 적합하다. 모로스는 앞니를 이용해 어쩌면 시아츠가 먹고 남긴 찌꺼기에 붙은 고깃점을 떼먹었을지도 모른다. 비굴한 삶이었을 것이다.
 
역사의 우연이 만들어낸 생명의 고유성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9400만 년 전, 이 두 공룡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땅이 이동하자 화산 폭발이 잦아졌다. 화산에서는 대량의 온실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온실가스는 환경이 변화시켰다. 그러자 시아츠가 좋아하는 먹이인 목긴공룡이 줄었다. 먹이가 줄자 배고픈 시아츠는 결국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했다. 반면 모로스는 살아남았다. 시아츠가 사라지자 모로스의 후손들은 커질 수 있었다. 그리고 약 2600만 년 후 티라노사우루스가 나타났다. 시아츠의 종말이 티라노사우루스를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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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약 9600만 년 전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육식공룡 시아츠(Siats). (출처: http://www.sci-news.com/paleontology/science-siats-meekerorum-dinosaur-utah-01567.html)
 
하지만 티라노사우루스의 시대도 영원하지 못했다. 약 6600만 년 전 우주로부터 거대한 유성체가 지구로 떨어졌다. 이 유성체는 너비가 약 15킬로미터로 에베레스트산만 했다. 이 거대한 돌덩어리가 지구를 강타할 때 발생한 에너지는 핵폭탄 3억 개와 맞먹었다. 이 사건으로 당시 생물의 60퍼센트가 멸종했다. 티라노사우루스도 이때 사라졌다. 그 후의 이야기는 뻔하다. 거대한 공룡들이 사라지자 우리 포유류가 번성할 수 있었다. 우리 인류도 진화했다.
 
이처럼 생명의 역사는 수많은 우연으로 가득하다. 이런 우연들이 복잡하게 엮어져 만들어진 것이 바로 오늘날의 우리다. 유성체가 지구를 빗나갔다면? 시아츠가 멸종하지 않았다면? 티라노사우루스도 없고 우리도 없다. 전 우주를 통틀어서 이런 역사를 가진 행성은 지구가 유일무이하다. 그래서 지구는 소중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9600만 년 전 모로스가 살았다. 이 발견은 중요하다. 그저 아이들이 외울만한 공룡 이름이 하나 더 는 게 아니다. 비록 사슴만 한 작은 육식공룡이지만, 모로스는 지구에 있었던 수많은 기막힌 우연 중 하나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더 나아가, 지구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이 보잘것없던 B급 사냥꾼이 수천만 년 후 두 발로 걷는 영장류의 관심을 받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글: 박진영 서울대학교 고생물학연구실/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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