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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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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려면 ‘수면부채’ 갚아라

<KISTI의 과학향기> 제3052호

가진 돈은 적은데 빚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면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허덕이면서도 빚을 갚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점점 더 차이가 벌어진다면 결국에는 망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빚의 논리는 비단 돈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새로운 개념의 빚이 등장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이 빚은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오늘 하루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충분히 긴장시킬 수 있는 존재다.

 

또한 이 빚이 늘어나게 되면 건강과 수명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면역력을 약화시켜 질병에 걸려도 쉽게 낫지 않게 만들거나, 각종 합병증을 유발시켜 별 것 아닌 질병도 만성질환으로 만들어버리는 재주도 부린다.

하지만 이 빚을 안고 사는 사람들 대부분 빚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아예 그런 빚이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이 빚의 이름은 바로 ‘수면부채(sleep debt)’다.

 

잠이 부족하면 수면부채 쌓여

 

돈이 부족하면 빚이 생기는 것처럼, 잠이 부족하면 수면부채가 쌓이게 된다. 수면부채란 수면이 부족한 현상이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될 시에, 건강은 물론 일상생활을 하는데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개념이다.

 

수면의학계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 개념은 불면증이나 일시적인 수면부족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부채가 누적되면 이자에 이자가 더해지듯이, 수면부채가 쌓이게 되면 건강을 유지하는데 있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는 의미다.

 

수면은 일반적으로 깊이 잠드는 단계와 얕게 잠드는 단계로 구분된다. 깊이 잠드는 단계를 육체의 피로가 풀리는 시간으로 보고, 얕게 잠드는 단계를 정신적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시간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인데, 정신적 스트레스가 줄어들게 되면 집중력과 인지력은 반대로 상승하게 된다.

 

따라서 수면시간이 부족하게 되면 수면부채가 쌓이게 되고, 이는 집중력과 기억력의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들은 집중력과 기억력의 경우 뇌 건강과 직결되는 사항이기 때문에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바로 뇌의 기능이 저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이 뿐 만이 아니다. 수면부채는 비만을 유발하기도 하고, 성장호르몬 분비를 저해시켜 청소년들의 성장을 방해하기도 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하루에 8시간 정도 자는 청소년의 비만율은 8.8%인 반면에, 수면 시간이 4시간 이하인 청소년의 비만율은 13.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잠이 부족하게 되면 교감신경을 흥분시켜 코르티솔(cortisol)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많이 분비 되는데, 이 호르몬이 분비되면 될수록 스트레스가 쌓여 청소년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면 부채가 유발하는 가장 큰 문제는 안전

 

뇌 기능 저하나 비만율의 증가도 문제지만 수면부채가 유발하는 문제 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안전 문제다. 최근 들어 고속도로에서 잇달아 발생했던 졸음운전 사고의 원인은 모두가 수면부채가 낳은 비극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경찰청과 한국도로공사가 최근 5년간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졸음운전 사고를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총 2241건이 발생하여 1786명에 이르는 사상자를 낸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같은 고속도로 졸음운전 사고의 치사율은 과속으로 인한 사고의 2.4배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수면의학계에서는 졸음운전의 원인을 수면부채가 누적됨에 따라 드러난 ‘미세수면(microsleep)’의 발생으로 보고 있다. 미세수면이란 쉽게 말해 깜빡 조는 행위지만 그냥 조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무실이나 교실에서 조는 사람 대부분은 자신이 졸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미세수면 상태에 접어든 사람들은 자신이 졸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미세수면 증상이 나타난 피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미 스탠퍼드대의 실험 결과를 살펴보면 이들 거의가 눈앞에서 불빛을 여러 번 번쩍였는데도 전혀 깨닫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의 경우 대부분 갖고 있을 누적 수면부채는 어떻게 갚아 나가야 할까. 이에 대해 대한수면연구학회의 관계자는 “잠을 보충한다고 주말에 몰아서 자는 것은 오히려 주말 이후의 수면리듬을 깨뜨릴 수 있다”라고 지적하며 “수면부채가 누적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주말까지 기다리지 말고 다음날부터 매일 조금씩 빚을 갚아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가령 전날에 밤을 새웠다면 다음날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쪽잠으로 일부 부채를 갚고, 그날 저녁부터 몇 일 동안 평소보다 잠자리에 드는 시각을 앞당겨서 또 다시 수면부채를 상환해 나가라는 것이다. ‘일시불’이 아닌 ‘할부’로 빚을 갚아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수면부채 개념에 대해 일각에서는 한 때 큰 인기를 끌었던 ‘아침형 인간’의 개념을 거론하면서 정면으로 반박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날수록 인생을 두 배로 살 수 있다는 논리로 접근하고 있는 것.
 
하지만 대부분의 수면의학 전문가들은 아침형 인간이란 개념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 개념은 체질적으로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침형 인간의 개념을 강요하는 것은 그 사람의 수명부채를 급속도로 쌓이게 만드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대한수면연구학회의 관계자는 “수면시간을 줄여서 성과를 높인다는 이른바 아침형 인간 방식의 문화가 위험한 이유는 단순히 건강이나 안전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라고 밝히며 “수면부채의 누적은 생산성 저하나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국가 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빠르게 갚아 나가는 것이 좋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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